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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패션은 다양성을 통해 미래로 나아간다

입력
2018.07.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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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루이 비통 남성복을 맡게 된 버질 아블로의 첫 패션쇼. 루이 비통 인스타그램
올해 루이 비통 남성복을 맡게 된 버질 아블로의 첫 패션쇼. 루이 비통 인스타그램

올해 초 루이 비통 남성복을 맡게 된 버질 아블로가 선보이는 첫 번째 패션쇼가 며칠 전 파리에서 열렸다. 이 패션쇼는 스트리트웨어가 고급 패션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금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패션쇼에 등장한 옷 외에도 새로운 디자이너, 패션쇼의 외형 등에서도 하이 패션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떻게 자신을 바꿔가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우선 아블로는 미국 출신이고, 흑인 남성에, 건축학도 출신으로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다. 즉 지금까지 하이 패션을 이끌어 오던 사람들과는 아주 상반된 지점에 있다. 루이 비통의 모기업인 LVMH는 여러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큰 기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 상황과 각 브랜드의 콘셉트에 맞춰 디렉터를 임명하고 각 브랜드의 방향을 조절하고 있다.

흑인인 아블로가 루이 비통 남성복을 맡게 된 건 같은 LVMH 소속인 디올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 맡긴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디올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지만 여성 디자이너가 이 브랜드를 맡은 적은 없다. 이런 식으로 오래되고 고착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새로운 디렉터를 인종과 성별을 고려하며 찾아 내고 이를 통해 브랜드에 이전과는 다른 문화적 기반을 세우는 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톰 포드나 마크 제이콥스처럼 미국 출신 디자이너들이 유럽 브랜드를 맡아 성공한 사례들이 이미 있다. 하지만 최근의 동향을 보자면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캘빈 클라인이 얼마 전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를 디렉터로 임명한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즉 미국의 전통적인 브랜드는 유럽에서, 프랑스의 전통적인 브랜드는 미국에서 각기 디렉터를 데려왔다. 둘 다 기반하고 있는 나라가 기존 정체성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다. 이들은 변화의 방식으로 자신의 문화에 대해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한 새로운 사람을 찾아 데려오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버질 아블로가 첫 패션쇼에서 배포한 쇼 노트. 모델과 그들의 부모가 어디 출신인지를 표시한 지도. 버질 아블로 인스타그램
버질 아블로가 첫 패션쇼에서 배포한 쇼 노트. 모델과 그들의 부모가 어디 출신인지를 표시한 지도. 버질 아블로 인스타그램

아무튼 이런 변화는 패션쇼의 외형도 아주 쉽게 변화시켰다. 이번 루이 비통 패션쇼에는 흑인 모델이 이례적으로 많이 등장했고 그외에 많은 국적, 인종의 모델들이 등장했다. 이들의 출신을 지도에 기록한 쇼 노트를 배포하는 등 이 이슈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모델 쪽에서는 인종 다양성의 문제가 자주 언급되고 패션쇼가 끝나면 인종, 국가 등을 표시한 통계 자료를 비정부기구(NGO)들이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계속 주의를 줘야 가능했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해결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 이번 쇼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즉 가장 높은 자리에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면 그 아래로는 자연스럽게 변해간다. 성별 다양성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블로는 이번 데뷔 패션쇼에 수천 명의 미술 전공 학생들을 초대해 패션쇼를 보게 했다고 한다. 이 역시 패션 엘리트 중심이었던 하이 패션이 앞으로 더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이 이끌어가게 될 거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위에서 봤듯 아블로도, 시몬스도 패션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은 가능한 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인터넷으로 글로벌화 된 젊은이들의 문화가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예컨대 하이 패션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유럽 엘리트 출신의 백인 남성 같은 편향된 구성원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자기들끼리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양성 이슈는 ‘함께 잘 지내면 좋은 것’이라는 표어에서 멈추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하고 생각의 영역을 넓히며, 더 많은 걸 포용해 새로운 걸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최근 하이 패션계의 움직임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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