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애시(Arthur Ashe Jr. 1943~1993)는 US오픈(1968)과 호주오픈(1970), 윔블던(1975)까지 석권한 미국 흑인 프로 테니스 선수로 말년의 인권운동으로도 큰 존경을 받지만, 선수로서 그의 이름 앞에 흔히 붙는 ‘흑인 최초’의 타이틀은 대부분 틀렸다. 그보다 앞서 흑인으로서 세계 테니스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윔블던을 포함 통산 11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이가 있다. 흑인 여성 앨시어 깁슨(Althea Gibson, 1927~2003)이다.
깁슨은 애시보다 훨씬 앞선 1956년 프랑스 오픈에 출전해 흑인 최초로 우승했고 복식도 석권했다. 그 해 윔블던에서는 단식 준우승,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그는 U.S오픈의 전신인 U.S내셔널스에서 우승했고, 57년 7월 6일 윔블던 80년 역사상 최초로 흑인으로서 단식에서 우승했다. 그는 그 해 윔블던 복식 우승 트로피도 챙겼다. 58년 윔블던과 U.S내셔널스 단식 방어에 성공했고, 윔블던 복식서도 다시 우승, 3년 연속 복식 석권의 기록도 남겼다. 57년 세계랭킹 1위였던 그는 애시보다 18년 앞서 윔블던 정상에 섰다. 그는 AP통신의 57, 58년 올해의 여성 운동선수로 선정됐고, 타임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의 표지를 장식했다.
깁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목화농장 노동자의 장녀로 태어나 대공황이 시작된 2살 무렵 뉴욕 할렘으로 이사했다. 집 인근에 있던 경찰 운동시설이 낮 시간 지역 아이들에게 개방되자 그는 금세 스펀지 공을 치는 패들테니스(paddle Tennis)에 몰두, 12살이던 39년에 뉴욕시 여성 패들테니스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1941년부터는 흑인 리그인 미국테니스협회(ATA) 대회에 출전, 주니어리그부터 성년리그까지 거의 모든 대회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그가 유명해지자 사실상 백인들만의 리그였던 USTA가 49년 그의 출전을 허용했다. 그는 U.S내셔널스 대회에 출전한 첫 흑인 선수로서, 2년 전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무대에 선 재키 로빈슨과 비교되지만, 야구보다 테니스가 훨씬 보수적인 종목이란 점에서 ‘짐 크로’의 장벽을 허무는 데는 깁슨의 공이 더 크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37세 되던 1964년에는 프로 골퍼로 전향, LPGA무대에 선 최초의 흑인으로도 기억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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