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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문선민 발탁 ‘명’ 역습 못 살린 패배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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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문선민 발탁 ‘명’ 역습 못 살린 패배 ‘암’

입력
2018.06.30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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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 변화를 패인이라고 하지만

2014년엔 안 바꿨다고 비판해

무명에 가까운 K리그 선수들

투지와 실력에 세계가 놀라

신 감독 ‘트릭’ 발언은 논란 불러

신태용 국가대표 감독이 18일 스웨덴과 러시아월드컵 F조 1차전에서 패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신태용 국가대표 감독이 18일 스웨덴과 러시아월드컵 F조 1차전에서 패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연합뉴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계속 전술을 바꾸자 일부 팬들은 “과학자냐”고 성토했다. 실험만 하다 끝날 거냐는 비난이었다.

신 감독은 스웨덴, 멕시코, 독일을 상대로 대응법이 각각 다른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길 원했다. 가장 중요한 스웨덴과 첫 경기 때 야심 차게 4-3-3 포메이션을 가동했지만 0-1로 패했고 16강 탈락의 결정타가 됐다. 상대를 너무 의식해 우리 플레이를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수들에게 익숙한 4-4-2 포메이션으로 밀고 나갔어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맞다고도 할 수 없다.

홍명보호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하자 전술이 너무 단조롭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상대는 다양한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데 홍명보 전 감독은 예외 없이 4-2-3-1만 고집하다가 자멸했다는 거다. 4년 전과 지금의 분석이 손바닥 뒤집듯 정반대다. 이처럼 작전 구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스웨덴전 때 수비 위주의 조심스런 경기운영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아쉬운 건 역습 속도다. 웅크리다가도 한 번씩 예리하게 나가줘야 상대가 긴장하는데 손흥민(토트넘)이나 황희찬(잘츠부르크) 같은 빠른 공격수를 보유하고도 그러지 못했다. 누차 지적된 대로 체력 문제일 수도 있고 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수비가 중요한 이유는 공격을 위해서다. 수비를 하는 목적이 뭔지 선수들이 불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공을 빼앗으면 공격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충분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선수들에게 명확하게 목적의식을 심어주지 못한 신 감독 판단에 아쉬움이 든다.

조현우(왼쪽)와 손흥민이 러시아월드컵을 마치고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에 참석하고 있다. 영종도=류효진 기자
조현우(왼쪽)와 손흥민이 러시아월드컵을 마치고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해 인터뷰에 참석하고 있다. 영종도=류효진 기자

이번 대회 최고의 반전 주인공은 조현우(대구)와 문선민(인천)이다.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을 제치고 뽑힌 문선민의 기량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었다. 온두라스와 보스니아 등 단 두 번의 국내 평가전만 뛴 그가 최종 명단에 선발되자 ‘A매치 두 번만 잘하면 월드컵 가는 거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문선민이 오스트리아에서 치른 볼리비아와 평가전에서 부진하자 현장 기자들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1장의 카드를 허비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문선민은 멕시코, 독일전에서 진가를 보였다. 본선에서 통하지도 않는 어설픈 기술보다 투박해도 직선적이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훨씬 낫다는 걸 증명했다.

문선민(오른쪽)이 24일 멕시코와 2차전에서 저돌적인 드리블을 선보이고 있다. 로스토프나노두=류효진 기자
문선민(오른쪽)이 24일 멕시코와 2차전에서 저돌적인 드리블을 선보이고 있다. 로스토프나노두=류효진 기자

골키퍼도 깜짝 카드였다. 신 감독은 국내와 국외에서 치른 4차례 평가전에서 3명의 골키퍼를 돌아가며 기용했다. 이를 두고 한가하게 주전 경쟁하는 모양새를 취할 때가 아니라는 우려가 많았다. 사실 기자들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이 김승규(빗셀 고베)의 주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 감독은 A매치 경험이 6경기에 불과한 조현우를 낙점했고 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수문장으로 발돋움했다. 독일전에서 빨랫줄 같은 중거리 패스로 손흥민의 골을 도운 미드필더 주세종(아산무궁화), 김영권(광저우)과 함께 물샐틈없는 철벽 방어를 보여준 수비수 윤영선(성남FC)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들은 K리그에서도 빅 클럽 소속이거나 스타 대접을 받는 선수가 아니다. 무명에 가까운 국내파를 발탁해 월드컵 본선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러시아월드컵이 낳은 최고 유행어는 ‘트릭’이다. 첫 상대인 스웨덴을 조금이라도 더 헷갈리게 하겠다는 의도였지만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원했던 효과는 못 내고 무성한 뒷말만 낳았다. 신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이면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멕시코전에서 신태용(맨 왼쪽) 감독이 코칭스태프와 전술 상의를 하고 있다. 로스토프나노두=류효진 기자
멕시코전에서 신태용(맨 왼쪽) 감독이 코칭스태프와 전술 상의를 하고 있다. 로스토프나노두=류효진 기자

신 감독은 월드컵 기간 내내 전술훈련을 비공개로 해 취재진 원성을 샀다. 특히 스웨덴전 선발 멤버는 완전히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경기 당일 오전 한 언론에서 4-3-3이 가동될 거란 기사를 냈다. 멕시코와 2차전 오전에도 이재성(전북)이 손흥민의 투 톱 파트너라는 보도가 같은 언론에 나왔다. 신 감독이 전전긍긍하며 숨겨온 베스트11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유출됐다. 신 감독과 축구협회는 일부 선수가 에이전트에게 말한 내용이 흘러나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감독은 ‘트릭’ 발언으로 뭇매를 맞아가며 조그만 정보라도 감추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에이전트에게 베스트11을 떡 하니 알려준 선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몇몇 태극전사들은 월드컵에 임하는 기본 마음가짐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러시아월드컵을 마치고 29일 귀국한 국가대표 축구팀. 영종도=연합뉴스
러시아월드컵을 마치고 29일 귀국한 국가대표 축구팀. 영종도=연합뉴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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