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Koko)는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소통한 암컷 서부 롤랜드 고릴라다. 알려진 바 그는 영어 단어 2,000여 개를 알아 듣고 1,000여 개를 수화로 구사했다. 그의 수화란, 연구자들이 미국표준수화(American Sign Language)를 변형해 만든 ‘고릴라수화(GSL)’여서 극소수만 이해하는 일종의 암호였지만, 그와 인간이 ‘대화’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언어능력을 떠나, 인간이 다른 영장류에게 품을 만한 환상을 채워줄 만큼 위엄 있고 점잖았고, 여린 생명 특히 어린 고양이들에게 자애로웠다.
코코는 단일 개체로선 가장 오래, 인간의 실험-관찰 연구 대상이었던 비(非)호모사피엔스였다. 그는 채 한 살이 안 된 1972년부터 45년여 동안 발달심리학자 프랜신 “페니” 패터슨(Francine “Penny” Patterson, 1947~)과 그가 설립한 고릴라재단(The Gorilla Foundation) 연구자ㆍ사육사들과 함께 살았다. 코코는 넘치도록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지만, 동물원 고릴라에게도 대체로 허용되는 종의 본성인 무리생활을 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들의 언어, 즉 무리끼리 소통하는 소리와 몸짓 등 동물언어는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것이다. 그 탓인지 어쩐지, 코코는 어떤 수컷 고릴라에게도 반려로서 곁을 주지 않았고 당연히 새끼를 배거나 낳은 적이 없었다.
그가 만 46년 11개월을 살고 6월 19일 숨졌다. 고릴라재단은 “코코는 모든 고릴라들의 대사(ambassador)이자 종간 소통과 공감의 아이콘으로서, 수많은 인류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며 “그는 인류에게 고릴라의 (놀라운) 감정 및 인지 능력을 알림으로써, (인간 중심) 세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koko.org)
SNS 등에는 공감과 애도의 글이 쇄도했다.
코코는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축제가 한창이던 1971년 7월 4일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사육사들은 그를 ‘하나비코(はなび
子, 불꽃의 아이)’라 불렀다. 코코(애칭)는 태어나자마자 건강이 안 좋아 어미 품에서 떨어져 집중치료를 받았고, 생후 10개월 뒤 스탠퍼드 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의 페니에게 연구 목적으로 위탁됐다. 당시는 영장류의 인간 언어 학습 능력과 언어소통 연구가 지대한 관심을 끌던 때였고, 코코는 ‘때묻지 않은’ 샘플이었다. 코코는 대학과 동물원의 배려로 74년부터 대학 캠퍼스 귀퉁이의 방 다섯 개짜리 큼직한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페니와 거의 24시간 함께 지냈다. 그는 페니의 침실 등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 부엌 등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유년 아이들처럼 온갖 인형과 장난감들을 갖고 놀았다.(nyt, 1975.6.27
) 그리고 수화 통역가 등 비음성언어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npr
) 페니는 75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코코가 4살 무렵 이미 170여 개 단어를 깨우쳤고, “어휘를 창의적으로 구사하는 능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유인원의 인간 언어 학습능력 연구는 1930년대 시작됐다. 인간의 언어능력이 문화ㆍ학습의 산물이라면 유전자의 98% 이상을 공유하는 유인원도 인간처럼 양육하면 언어를 익힐지 모른다는 가설, 거꾸로 노엄 촘스키의 주장처럼 인간 언어능력은 유전적으로 획득된 고유의 자질인지 따져볼 필요도 있었다. 늑대 무리에 의해 길러진 인도의 ‘늑대 소녀들
’이 발견된 것도 1920년대였다. 인디애나주립대 심리학자 윈스롭 켈로그(Winthrop Kellogg)는 ‘구아(Gua)’란 이름의 7개월짜리 침팬지를 자신의 10살짜리 아들과 함께 키우며 말을 가르쳤다. 그의 실험은 9개월 만에 실패했다. 당시는 유인원의 혀와 입술 후두 등 해부학적 구강구조가 음성 언어의 발성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유인원 수화 연구는 60년대 중반 되살아났다. 1963년 프랑스 SF작가 피에르 불(Pierre Boulle)의 소설 ‘혹성탈출(1963)’이 출간됐고, 68년 영화가 개봉됐다. 적어도 연구자금을 얻는 데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1966년 네바다대 심리학자 앨런과 베아트릭스 가드너 부부의 침팬지 ‘와쇼(Washoe)’가 처음이었다. 가드너 부부에 따르면 와쇼는 22개월 만에 34개 어휘를 수화로 익혔고, ‘냄새’라는 어휘를 전달하기 위해 ‘꽃’이란 단어를 제시하는 등 언어적 창의(비유)를 발휘했으며, 다른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백조를 두고 ‘Water Bird’라 칭한 것도 와쇼였다.
그들의 논문은, 실험 방법론과 데이터 등에 대한 동료 학자들의 평가(Peer Review)를 받은 소위 주류과학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촘스키 등의 언어학자와 주류 영장류학계는 대부분 무시하거나 의심했지만, 가능성만으로도 고무적이었다. 무엇보다 보도를 접한 시민들이 열광했다. 콜롬비아대 언어심리학자 허버트 테라스(Herbert S. Terrace)의 챔팬지 ‘님 침스키(Nim Chimpsky, 노엄 촘스키의 패러디)’는 44개월 동안 125개 수화 어휘를 익혔다. 하지만 테라스는 그게 침스키가 인간의 언어로 인간과 소통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결론지었다. 침스키는 먹을 걸 달라는 등 주로 동물적 필요를 구문이 아닌 몸짓 기호로 전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한 마디로 그건 방식만 다를 뿐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이 주인과 소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소통이라는 것도 연구자의 표정과 몸짓을 모방하거나 학습된 방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일 뿐이라는 거였다.(nyt, 1979.10.21
)
보노보,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가 70년대 내내 활발히 이뤄졌고, 결과도 평가도 엇갈렸다. 코코는 기량 면에서 가장 돋보인 피실험자였다. 더욱이 그는 외모로나 영화 ‘킹콩(1933)’의 이미지로나, 다른 피실험 유인원에 비해 훨씬 위협적인 존재여서, 그의 친화력과 나긋나긋한 ‘애티튜드’는 상업적으로도 돋보였다. 78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코코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는(거울테스트) 사진을 커버에 실었다. 페니는 79년 학위를 받은 뒤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설립한 자신의 ‘고릴라재단’으로 코코를 옮겨 독자적인 연구를 이어갔다.
재단과 일부 언론이 전한 코코의 능력은 가히 놀랍다. 페니에 따르면, 코코의 조어 능력은 와쇼를 능가해, ‘hairbrush’를 ‘긁는 빗(scratch comb)’으로, ‘ring’을 ‘손가락 팔찌(finger bracelet)’로, ‘mask’를 ‘눈 모자 eye hat’로 묘사했다. 코코가 피리(recorder) 부는 법을 익혀, 숨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npr) 페니의 운동화 끈을 하나로 묶은 뒤 자기를 잡아 보라며 도망치는 장난을 건 적이 있다는 건 페니가 전한 말
이었다.
코코의 연표나 다름 없는 재단 연표
에는 12살 무렵인 83년 코코가 뜰에서 작은 개구리를 발견하곤 손으로 소중히 감싸더니 그 무렵 짝짓기 반려로 함께 지내던 수컷 ‘마이클’이 해칠까 봐 은밀한 자리에 놓아주더라는 이야기와 함께, 코코는 작고 유약한 동물들에 대한 “온화함과 양육 본능”을 타고났다고 썼다. 스미소니언 자료에 따르면 야생 서부 롤랜드 고릴라 암컷은 6~9살 무렵 성적으로 성숙하고, 10~11살에 첫 새끼를 낳는다. 코코는 카메룬 태생의 고아 고릴라 마이클(Michael, 1973~2000), 신시내티 동물원의 은두메(Ndume, 1981~) 등 수컷 두 마리와 짝 지어졌지만, 교미를 마다했다. 재단 측은 부인했지만, 전 사육사 등에 따르면 서로 사이도 썩 좋지 않아 대부분 별거했다고 한다. 코코는 84년 생일선물로 받은 회색 고양이에게 ‘All Ball’이란 이름을 직접 지어주곤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다. 페니의 스탠퍼드대 연구 동료이자 78년 재단의 공동설립자인 론 콘(Ron Cohn)이 찍은, 코코가 ‘All Ball’을 품고 있는 사진은 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표지를 두 번째로 장식했고, 그 해 ‘Time’ 선정 ‘올해의 사진’으로 뽑혔다. 페니와 콘은 ‘코코의 아기고양이(Koko’s Kitten)’란 제목의 베스트셀러 어린이 책을 출간했다.
코코는 환경운동가로도 이름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따듯하고 코믹한 연기로 유명한 로빈 윌리엄스 등과 만나 ‘우정’을 나눴고, 80년엔 방송인 프레드 로저스의 인기 토크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4년 윌리엄스의 부음을 전해들은 코코가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해 하더니 입술을 씰룩였다”고 재단은 보도자료로
전했다. 저 모든 이벤트는 동영상 등을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코코는 전대미문의 스타 고릴라였다.
코코의 능력, 즉 재단 연구실적에 대한 의혹과 비판은 8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비판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과장됐고, 해석ㆍ통역의 변수가 너무 많고, 검증 가능한 연구 데이터가 없다는 거였다. 역사상 최초 ‘종간 온라인 채팅’으로 화제를 모은 코코와 페니의 1998년 AOL(American Online) 공개 채팅에서도 코코는 그리 인상적인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slate.com
) ‘와쇼’의 조어(swan→water bird)를 단지 그가 익힌 ‘물’과 ‘새’를 따로 칭한 것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던 ‘님스키’의 테라스는 “의미가 (코코의 행동이 아니라) 관찰자의 눈에 있다는 게 문제”(nyt, 1979 위 기사)라고 비판했고, 페니를 ‘열정과잉의 어머니(overzealous mother)’에 비유
하며 “그는 대리자식을 너무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다른 연구자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의미들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 대의 신경내분비학자이자 저명한 영장류학자 로버트 새폴스키(Robert Sapolsky, 1957~)는 “패터슨은 몇 개의 뭉클한 동영상 필름 외엔, 분석해볼 만한 어떠한 데이터도 공개한 적이 없다”(The Slate
)고 일축했다.
영장류 언어연구 및 지원은 80년대 이후 점차 시들해졌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저 비판의 요지는 코코의 연구가 과학이라기보다는 환상을 파는 고등 서커스에 가깝다는 거였다. 고양이 에피소드나, 대중적 스타들과의 만남 등 일련의 이벤트는 재단 후원금 모금 기획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릴라재단 직원들은 취업 시 재직 중 보고 듣고 겪은 일에 대한 비밀엄수 계약을 맺었다. 세상이 아는 코코는 페니와 재단이 소개한 코코였고, BBC다큐 등의 인상적인 장면들 중 상당수는 재단측이 제공한 자료영상이었다. 페니가 코코의 우리에 CCTV를 설치해두고 이어폰 마이크로 연구자나 사육사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ㆍ통제했다는 이야기, 사람의 가슴(젖꼭지)에 호기심이 많았던 코코를 위해 여성 사육사들에게도 가슴을 열어 보이게 해 2명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일, 야생 고릴라들과 달리 육식을 좋아하는 코코를 위해 페니가 영양사의 조언을 묵살한 채 칠면조 가공육이나 짠 스프, 초콜릿 등을 예사로 먹이고 하루 70~100정의 비타민과 영양보충제를 섭취하게 해 코코의 비만(127kg, 암컷 평균은 70~90kg)에 일조했다는 주장, 코코의 건강을 전담 수의사 없이 자연요법 전문가의 조언에 의존했다는 사실 등은 2012년 재단에서 집단 퇴사한 9명의 연구자ㆍ사육사들이 재단 이사진에 보낸 글을 통해 알려졌다. 그 일 직후 한 명을 뺀 이사진 전원이 사퇴했다고 ‘The Slate’
는 전했다.
페니의 연구는 르완다의 야생 고릴라 무리에 섞여 그들을 연구한 다이앤 포시(Dian Fossey, 1932~1985)의 그것과 방법론이나 연구 목적 등에서 상반되는 거였다. 77년 포시도 코코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의 논평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포시는 자신이 익힌 야생 고릴라들의 발성언어를 코코에게 시연했고, 코코가 무척 호기심을 보였다는 짤막한 글만 재단 연표에 실려 있다.
일부 스타 아역배우들이 타의로 ‘은퇴’한 뒤 겪는 어려움처럼, 실험이 끝나 동물원 등으로 복귀한 동물들도 새 삶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인간의 살뜰한 보살핌을 더 이상 못 받고 무리들과 경쟁해야 하는 일상은 우울증이나 과도한 공격성의 원인이 되고, 더러는 심장병 등으로 조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에 비하면 코코는 행운아였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2011년 ‘더 위크’
기자는 자신의 갓난 아이 사진을 본 코코가 두 팔로 아이를 안고 어르는 흉내를 내더니 사진을 가져가서는 물끄러미 쳐다본 뒤 입을 맞추고 제 인형을 건네더라는 일화를 전했다. 언어능력을 덮어 두더라도, 코코는 저런 뭉클한 이야기로 동시대 인간에게 큰 감동과 사랑을 전한 비범한 고릴라였다. 그리고 그런 비범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보여지는 그의 모습 뒤에 가려진 것들을 애써 살피게 했고, 인간 종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게 했다.
첫 고양이 올볼의 사고사(84년 말) 소식을 전해 들은 코코가 “cat, cry, have-sorry, koko-love”라 말하며 슬퍼했다는 일화를 환기하며 ‘비인간영장류(Non Human Primate)’의 슬픔과 언어적 표현에 감동했던, ‘동물은 어떻게 비통해 하는가 How Animals Grieve’의 저자 바버라 킹(Barbara J. Kingㆍ윌리엄&메리대 명예교수)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보낸 이메일
에서 “코코는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개별 동물들이 치르는 희생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했다. 코코의 삶에 박수를 보내더라도, 우리는 그가 고도로 통제된 비자연적 환경 안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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