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4개월 넘는 장고 끝에 기금운용본부장을 재공모하기로 했다. 624조원에 이르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중요한 자리가 1년도 훨씬 넘게 공석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여 차일피일 결정을 미뤄온 정부 책임론도 커지는 모습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4월 기금이사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3명 중 적격자가 없어 재공모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국민연금은 “다시 기금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선발 절차 등을 심의한 후 재공모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모는 지난 2월19일 시작돼 16명이 지원했고, 8명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이후 면접을 거쳐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인 윤영목 제이슨인베스트먼트 자문역(부사장), 이동민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 등 3명이 최종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초 곽 전 대표가 유력하다는 설이 많았지만 후보자 3명 모두 청와대의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이 명확한 낙마 이유를 밝히지 않는 가운데 ‘일부 후보가 복수 국적이다’,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은 것 같다’ 등의 추측들이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별도로 낙점한 후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재공모에 들어가면 절차를 서두른다 해도 빨라야 9, 10월은 되어야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7월 강면욱 본부장이 자진 사퇴한 뒤 이미 1년 가까이 공백 상태로, 지금까지 이 자리가 이렇게 오래 비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는 조인식 기금운용본부 해외증권실장이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장이 없으면 새로운 투자 영역에 도전하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기존 업무를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연금이 내달 도입할 예정인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와 관련해서도 주주권 행사 범위에 대한 기금운용본부장의 재량이 막대한 만큼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퇴직 후 3년간 금융 유관업종 재취업이 금지되는 불이익 탓에 그렇지 않아도 ‘사람 모시기 어려운 자리’로 꼽힌다. 업계에선 이번 후보자 전원 탈락으로 적임자 찾기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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