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7일(한국시간) 독일과 F조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를 마무리했다. 지난 3일 출국해 사전 캠프인 오스트리아 레오강을 거쳐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경기가 열리는 3개 도시인 니즈니노브고로드(스웨덴전), 로스토프나도누(멕시코전), 카잔(독일)을 각각 오가며 무려 9,000km 이상 이동했다. 신태용호가 거쳐온 지난 25일 간의 대장정을 3개 키워드로 결산했다.
트릭
신 감독은 지난 7일 볼리비아와 평가전(0-0)을 마친 뒤 손흥민-황희찬 대신 김신욱-황희찬 투 톱을 선발로 투입한 이유를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트릭이다”고 답했다. 스웨덴과 첫 경기를 앞두고 상대를 헷갈리게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미끼가 돼버린 김신욱이 입을 상처를 생각하지 않은 경솔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사 댓글은 ‘트릭’을 비웃는 내용으로 도배됐고 누리꾼들이 이를 여기저기에 갖다 붙이는 ‘트릭 놀이’가 유행했다. 신 감독이 평가전에서 계속해서 포메이션을 바꾸며 실험하는 것을 두고도 ‘신태용은 과학자’라는 조롱이 나왔다. 알고 보니 신 감독은 스웨덴전에서 김신욱을 원래부터 선발로 쓸 계획이었다. 김신욱에게도 미리 언질을 줬다. 조금이라도 더 상대를 혼란 시키려는 ‘트릭의 트릭’이었던 셈.
그러나 경기가 1-0 스웨덴의 승리로 끝난 뒤 적장인 예른 안데르센 감독은 “우리는 1,300개의 비디오 클립을 20분으로 요약해 한국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경기 내용을 봐도 상대 허를 찔렀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김신욱을 선발로 한 4-3-3 포메이션은 경기 초반 15분 정도만 효과를 봤다. 이후 날카로운 역습이 뒷받침되지 않으며 한국의 전략은 빛을 잃었다. ‘트릭’ 발언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무성한 뒷말만 낳고 말았다.
김&장
한국은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부터 수비가 불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본선을 앞두고 부동의 중앙수비수 김민재가 부상으로 낙마하며 신 감독의 수비 구상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결국 본선 내내 김영권-장현수가 중앙 수비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국내 유명 법률회사 이름을 따 이들은 ‘김&장’ 콤비로 불렸다.
이번 대회에서 둘의 희비는 크게 엇갈렸다. 지난 해 이란과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친 후 “관중이 너무 많아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는 말로 팬들의 질타를 받은 뒤 경기력마저 하락세였던 김영권은 심기일전했다. 스웨덴, 멕시코와 2경기에서 안정적인 수비력과 몸을 날리는 투혼으로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막아냈다. 그를 향한 비난은 순식간에 찬사로 바뀌었다. 반면 장현수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웨덴전에서 그가 어이 없이 찬 롱 패스를 무리하게 받으려다 주전 왼쪽 수비수 박주호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장현수는 고개를 숙였다. 멕시코전에서는 그가 범한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 선제실점을 했고 두 번째 실점 직전에도 무리한 태클로 비판 받았다. 장현수에게는 생애 처음 밟은 ‘꿈의 무대’ 러시아월드컵이 ‘악몽’으로 남게 됐다.
부상
행운의 여신이 손짓해도 모자랄 판에 부상 악령이 쓰나미처럼 대표팀을 뒤덮었다. 대회 전 부상으로 제외된 선수만 해도 김민재, 염기훈, 이근호, 권창훈 등 4명이다. 이 중 권창훈은 장기로 치면 ‘차(車)’에 해당하는 말을 하나 잃었다고 할 정도로 큰 손실이었다.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주호가 스웨덴전에서 ‘아웃’됐고 ‘주장’이자 핵심 전력인 기성용마저 멕시코전에서 종아리를 다쳐 독일전을 뛰지 못했다. 100% 정예 멤버를 가동해도 버거운 상대들과 격돌하는데 부상자로 인한 전력 누수가 어느 대회보다 많았다는 건 신 감독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카잔(러시아)=윤태석 기자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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