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이웃들은 돈 없었지만
북한 곁엔 중국∙러시아 있고
미국∙일본이 투자하면 한국 부담 적어
김정은, 중국 경제 모델 따를 것
싱가포르 장점 수용할수도
3~4년 내 한반도 통일 예상
중국 개방 때 중국인들은 몰랐지만
북한은 자본주의를 이미 알아
개방 땐 흥미진진해질 것
세계 투자업계 거물인 짐 로저스(76)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북한의 인력과 자원, 한국의 경험과 자본이 결합하면 세계적 불경기 속에서도 한반도는 가장 흥미로운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저스 회장은 10여년 전부터 ‘북한투자=대박’을 주장하던 인물로, 지난 2015년 모든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해빙되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그를 지난 21일 싱가포르 자택에서 만났다.
로저스 회장은 남북간 군사적 대치가 해소되고 상당한 수준의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가 가능한 ‘통일’이 3, 4년 내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통일 한국이 들어설 경우 경쟁력이 약화할 수 밖에 없는 일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통일에 반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로저스 회장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키드(Kid)’로 지칭하며 한반도 정세 전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_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했던 사람으로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북미 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이제 명백한 사실이 됐다. 몇 년 전 북한에 투자해야 한다고 이야기 할 때 모든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통일(unification)은 가까워지고 있으며 3, 4년 뒤 이뤄질 것으로 본다.”
_당신이 말하는 통일의 의미는 뭔가. 3, 4년 뒤 그런 상황이 온다는 근거는 뭔가.
“어떤 종류의 통일이어도 상관이 없다. 군사적 대치가 해소되고 상당한 수준의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가 가능한 상황이다.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다 줄 통일인데, 도대체 누가 반대하겠나.”
_통일비용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큰 비용이 안 든다. 수 많은 사람들이 북한으로 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 동독과 다르다. 서독을 제외한 당시 동독의 이웃들은 돈이 없었다. 북한은 지금 한국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일본, 미국도 투자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이 투자하면 한국 부담은 크지 않다.”
_미국, 중국, 일본이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완충지다. 일본은 위협을 느낀다.
“일본의 경우라면 그게 맞다. 일본은 북한 투자를 바라지만 통일에는 반대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8,000만 인구에, 저렴하면서도 잘 교육된 고급인력, 거대한 천연자원과 자본ㆍ전문가로 무장한 한반도를 일본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 한국과 경쟁이 안될 것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통일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은 다르다. 통일을 통해 중국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고, 미국은 주한 미군에 쓰는 돈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미국 납세자로서 총성이 멎은 지 65년이 지나도록 주한 미군에 돈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
_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군사 훈련 중단을 언급하자 대북 억지력 약화 우려가 나왔다.
“50년이 넘도록 양국이 훈련을 했다. 그런데 한두 해 훈련을 멈춘다고 억지력이 약해진다는 건 억지 주장이다. 일본은 원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합동훈련은 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은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_김 위원장 리더십의 특징은
“그는 이전 북한 지도자와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외부세계에 거의 안 나갔지만, 그는 해외에서 살았다. 김정은은 집권 뒤 15개 자유무역지구를 조성하고 국제 스키리조트 사업, 국제 사이클ㆍ마라톤 대회를 개최했다. 그는 북한 밖의 다른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북한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한다.”
_비핵화, 경제개방에 임하는 김 위원장의 자세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으로부터 들어보면 그가 진지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이 사람은 진지하게 준비돼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처럼 살기를 원하지, 지금의 북한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는 북한 지도자다.”
_북한이 베트남 경제 개발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 전날 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시티투어에 나선 뒤부턴 싱가포르 모델도 거론된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중국 모델을 따를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다. 중국은 북한이 이용하게 될 거대한 시장이다. 중국 모델이 현재로선 북한에 가장 효과적인 모델이다. 북한이 싱가포르에 사람들을 보내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는 것을 보면 싱가포르도 비중 있게 보고 있다. 중국을 기반으로 하되, 여러 나라의 장점을 모은 종합모델이 될 수도 있다.”
_투자 희망 분야와 북한 여건은
“먼저 주식시장을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북한은 이미 주식, 은행 같은 금융시스템을 익혔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곧 열릴 것으로 본다. 중국 개방 때 중국인들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북한은 자본주의를 이미 알고 있다. 주변의 잘 사는 이웃들처럼 부유해지기를 원한다. 1981년 중국 개방 때보다 조건이 훨씬 좋다. 풍부한 자원에 뛰어난 인력을 가진 나라의 문이 열리는 것은 드문 기회다.”
_어떤 분야가 유망한가
“모든 분야가 흥미진진할 것이다. 식탁, 식탁보, 비누, 전기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북한 문이 열리면 북쪽이 궁금한, 모든 사람들이 그리로 갈 것인 만큼 관광분야도 밝게 본다. 북한은 DMZ를 허물기 전에 부족한 호텔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농업 분야도 낙관적이다. 농업 분야에서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다.”
_언제 대북 투자를 시작할 계획인가.
“합법적으로 북한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 바로 투자할 것이다. 그 ‘합법’이 통일일 필요는 없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나라 중 하나다. 한국과 중국, 아주 부유한 이웃 사이에 있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매우 높다. 투자 여건이 됐는데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국 러시아는 이미 투자를 하고 있다. 북한이 모두에게 열리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의 대한항공에 투자한 것도 간접적인 대북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이기 때문에 현재 북한 투자는 불법인데, 한반도 전쟁 우려 해소와 그에 따른 방문객 증가를 예상한 투자다.”
_동남아 진출 한국 기업들은 북한 이전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열리면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한국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다. 더 저렴하면서도 더 잘 교육된 노동력, 같은 언어와 문화, 음식까지 북한은 모든 나라에, 특히 한국에는 더 큰 기회다. 북한에서 생산한 것을 중국에만 팔 이유가 없다. 동남아에도 팔아야 한다. 북한이 개방돼도 신남방 정책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_미국이 최근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세계 경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역사상 가장 낮은 지금 금리는 앞으로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터무니없는 수준의 저금리는 일찌감치 없었다.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파산할 것이다.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길 바란다.”
_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금리가 역전됐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유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나.
“일시적 유출이야 있겠지만, 전세계 다른 나라들도 금리를 인상할 것이기에 그렇게 될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서 돈을 뺄 수도 있다. 대다수는 안 그럴 것이다. 내가 한국은행이라면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 문제엔 신경을 안 쓸 것이다.”
_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대한 평가와 향후 무역전쟁 전망은.
“무역전쟁은 모두의 피해로 이어진다. 미국이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면 그것을 만드는 미국 내 수천명은 덕을 보겠지만 냉장고 같은 알루미늄 사용 제품을 구입하는 3억 인구는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전세계 다른 사람들도 피해를 보게 된다. 다음 경제 위기가 오면 그때에는 고금리, 파산, 무역전쟁이 한꺼번에 겹쳐서 올 것이다.”
_세계 경제, 금융시장에 대한 전망은.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다음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위기가 닥친다면 아주 지독할 것이다. 대부분의 위기는 높은 부채에서 비롯됐다. 현재 부채 규모는 과거보다 훨씬 크다. 미국 중앙은행만 놓고 보면 지난 10년 동안 빚(채권)이 5배나 늘었다. 전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다. 무역전쟁까지 같이 펼치는 와중에 닥칠 다음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내 생애 최악의 위기가 될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로부터 10년이 지난 만큼 2, 3년 내로 예상한다.”
싱가포르=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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