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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키고 싶을 뿐인데…” 나이지리아 유목민ㆍ농민 유혈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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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키고 싶을 뿐인데…” 나이지리아 유목민ㆍ농민 유혈 참극

입력
2018.06.26 17:50
수정
2018.06.26 21:4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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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 유목민 풀라니족 이동 중

기독교 베롬족이 습격해 5명 실종

풀라니족도 맞보복 86명 숨져

# 내전 수준 심각해진 부족 갈등

500여명 숨지고 수십만 피난길

“나이지리아 치안 맹점 드러내”

나이지리아 서부 플래토주 시민들로 짐칸까지 가득찬 픽업트럭이 현지 군인의 검문을 받고 있다. 플래토=로이터 연합뉴스
나이지리아 서부 플래토주 시민들로 짐칸까지 가득찬 픽업트럭이 현지 군인의 검문을 받고 있다. 플래토=로이터 연합뉴스

“분쟁이 정치 이슈화되면서 강도나 다른 범죄 요소와 얽힌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유목민 문화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나이지리아의 지역 목축업자협회 자문위원을 지낸 모함메드 벨로는 22~23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중부 플래토주에서 가축 방목을 둘러싸고 벌어진 유목민과 농경 부족과의 충돌 사태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NYT 등 외신은 나이지리아 중부 플래토주 등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유목민 풀라니족이 기독교도인 베롬족의 몇몇 마을을 기습해 최소 86명을 살해했다고 전했다. 앞서 21일에는 베롬족이 가축을 트럭에 태워 이동 중이던 풀라니족을 기습, 차량을 파괴하고 타고 있던 5명이 실종됐다. 복수가 더 큰 복수를 낳는 악순환이 나이지리아 중부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종교가 다르고 생활양식도 농업ㆍ유목으로 각각 다른 두 부족의 대립으로 올 들어서만 500여명이 죽고 수십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고 전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유목민과 농경민 사이의 토지 확보를 둘러싼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나이지리아에서는 최근 그 피해가 내전 수준에 이를 정도로 심각해졌다. 미 국무부가 25일 성명을 발표, 두 부족의 냉정한 대응을 촉구할 정도다. 풀라니족과 베롬족의 극심한 대립은 자연적 요인(기후변화)과 정치적 요인(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함께 맞물린 결과다.

풀라니족의 원래 유목 지역이 나이지리아 북부였던 만큼 두 부족은 10여년전만 해도 싸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따른 초지 감소와 보코하람의 대량 학살을 피해 풀라니족이 북부에서 소와 양 등을 몰고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세력을 확장한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중부(플래토주 조스시)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르면서 기독교를 믿는 베롬족의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높아졌고, 유목 부족을 규제하는 강력한 입법이 잇따랐다.

지난해 베누에주 등 몇몇 주정부에서 유목민의 가축 이동을 제한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 게 대표적이다. 가축 방목 금지 규정을 어길 경우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올해 초 베누에주에서 성난 베롬족 군중이 풀라니족 7명을 불태워 죽이면서 최악의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베누에주에서 30만명 이상이 폭력 사태를 피해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캠프 등지로 피란했다. 인근 플래토주에서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유목민과 농민의 충돌이 계속되면서 2015년 집권한 모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풀라니족 출신으로 무슬림인 부하리 대통령이 종족 갈등에서 풀라니족에 경도돼 있으며, 유목 부족의 공격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부하리 대통령이 갈등 완화 차원에서 ‘가축 방목 금지법’ 철회 가능성을 내비치자, 농경 부족이 대다수인 남부지역의 부에누, 에키티, 타라바 지역 주지사들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한편 두 부족 사이의 갈등이 해결 기미를 찾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나이지리아 치안의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솔라 타요 영국 채텀하우스 연구원은 “나이지리아의 치안 서비스는 인구 증가나 도시화 정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특히 외진 지역에서 처참한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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