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임기를 2년 남긴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해 포스코 사외이사로 구성된 5인의 CEO승계카운슬이 꾸려졌다.
여당 원내대표는 “카운슬이 권 회장이 짠 각본대로 후임을 정했다”고 의심하지만, 카운슬을 향해 쏟아진 압력은 권 회장으로 대표되는 사내요구뿐만이 아니었다. 정부 여당, 야당, 사회단체, 언론의 요구도 거셌으며 어느 하나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부의 요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 중도 퇴진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외풍을 막을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포피아’(포스코+마피아)로 불릴 만큼 폐쇄적인 포스코 경영진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을 인물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철강 편중을 벗어나 비철강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특정대 특정학과’ 일색의 경영진 구성이 지속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이후 빨라지는 MB 정부의 자원외교 수사에서 포스코가 비켜나기 힘든 만큼 해외 자원 개발 사업과 연관된 인사가 회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압박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 요구들은 상충한다. 지난 10년간 능력을 인정받은 임원들이라면, 회장이 관심을 쏟은 각종 사업에 관여하지 않은 이가 드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부 인사를 선발하면, 정권의 개입 시비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 모두를 고려할 때 차기 포스코 회장 후보로 ‘非 서울대, 非 엔지니어’ 출신 내부인사인 최정우 사장이 선정된 것은 잘된 인선이란 평이 많다.
그럼에도 선발 과정을 보며 우려되는 점이 생겼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유명한 비유인 ‘미인대회’와 흡사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케인스가 살았던 20세기 초 영국의 미인대회는 선발 방식이 독특했던 모양이다. 미인 100여명의 사진을 놓고 모든 참가자로 하여금 마음에 드는 사람을 6명씩 선택하도록 해, 가장 득표를 많이 한 6명의 미인을 선발한다. 그리고 최종 결과와 가장 비슷한 투표를 한 사람에게도 상이 수여된다. 이렇게 선발하다 보니 선발 참가자들은 상 받을 욕심에 자신의 맘에 드는 사람을 고르기보다 최종 6명에 선발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즉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을 뽑으려 했다.
포스코 CEO 선발 과정에도 카운슬이 판단하는 가장 적합한 인물을 고르기보다는 내ㆍ외부의 상충하는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역량 있는 임원이 CEO가 관심을 기울이는 업무를 맡게 되고, CEO와 밀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전 정권에서 임명된 CEO와 밀접하다는 이유로 차기 CEO 후보에서 탈락하는 일이 반복되면 CEO의 지휘권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외부 인사 영입을 무조건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한다면 유능한 외부인은 포스코 CEO가 될 수 없다.
현 정부는 포스코 KT 등 오너 없는 대기업과 금융지주 CEO 선발에 대해 ‘개입하지 않겠지만, 선발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이들 기업의 CEO 선발 역시 포스코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정부의 ‘기업 인사 불개입 원칙’은 당연한 것이지만, 가장 적합한 인물이 선발될 수 있는 룰을 만드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책임감 있는 여당 지도부라면 차기 CEO 후보를 구체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비방하며 ‘군기 잡기’나 하지 말고, 앞으로 최고의 역량을 갖춘 인물이 선발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절차를 만드는 일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반복되는 중도퇴진을 방지하기 위해 CEO 임기 주기를 정권 임기와 맞추는 제도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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