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20곳 실태조사
무분별한 접촉, 인수공통전염병 감염 위험
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어 어린이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체험형 동물원의 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을 사육장이 아닌 관람객이 있는 공간에 돌아다니게 하거나, 관람객과 동물 사이에 경계가 없는 무경계ㆍ근거리 전시형태가 성행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많은 종의 동물을 전시하기 위해 아예 공중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관리인원이 없는 공간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만질 수 있는 구조도 많아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올해 3월1일부터 6월 16일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가능한 전국 20개 동물체험시설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16일 기준 20곳 가운데 16곳은 동물원으로 등록을 완료했고, 3곳은 등록을 진행 중이었으며 미등록 상태인 업체는 1곳이었다.
관람객과 동물 사이 경계 없고 무분별 접촉 빈번
별도의 사육공간을 두지 않거나, 동물을 관람객과 같은 공간으로 옮겨놓거나, 동물이 사육장에 있어도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는 무경계ㆍ근거리 전시를 하는 곳이 20곳 중 13곳에 달했다. 사육장 밖에서 전시되는 동물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왈라비, 카피바라, 페럿 등 포유류부터 설가타육지거북, 파이톤 등 파충류까지 다양했다.
또 사육장에 있는 동물의 경우에도 20곳 중 15곳에서 사육사가 사육장 외부로 동물을 꺼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접촉 체험에 사용되는 동물 중에는 일본원숭이, 사막여우, 청금강앵무, 사바나모니터, 그린이구아나 등 국제적 멸종위기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처럼 전시동물과 관람객의 무분별한 접촉은 동물복지 측면뿐 아니라 인수공통감염병 전파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게 어웨어 측의 지적이다.
관람객 피할 공간 없고 뜬장에 이종합사까지
3개 업체에서는 동물이 스스로 바닥으로 내려올 수 없는 형태의 구조물에 동물을 올려놓는 ‘고립상태’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라쿤을 공중에 설치된 선반 형태의 구조물에 올려놓거나 ▦스컹크를 인공 연못 가운데 설치된 섬 형태의 구조물에 전시하거나 ▦슬로로리스를 T자 형태 구조물 또는 다른 동물 사육공간 위에 설치된 해먹에 올려놓았다. 동물이 바닥에 내려올 수 없는 전시 형태는 동물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하며 상시 접근 가능한 급수대 설치가 불가능해 탈수 등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 관람객의 접근은 쉬운 반면 대부분의 사육장에서 동물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전시 중인 동물 65종 중 킨카주, 페럿 2종에 한해서만 동물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 업체도 있었다. 야외방사장을 운영하는 곳도 5곳에 불과했고, 실외에 사육시설이 있어도 철제 케이지나 컨테이너를 사용하면서 제대로 된 방사장은 없었다.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일본원숭이, 사박여우, 돼지, 고양이, 토끼, 닭 등을 바닥이 철망으로 된 뜬장이나 새장에서 사육하는 곳도 9곳이나 됐다.
부적절한 이종합사도 문제였다. 14곳이 2종 이상의 야생동물을 합사해 전시하고 있었는데 많게는 6종의 동물을 한 사육장에 전시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사육공간은 따로 있더라도 원숭이와 파이톤, 개와 파충류 등 다른 종의 동물을 함께 꺼내 보여주거나 재미를 위해 동물끼리 접촉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관찰됐다. 이종 간의 합사는 생태계에서 같은 서식지에 서식하는 동물에 한해 행동학적 습성과 질병 등을 고려해 시도해야 함에도 마구잡이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또 여러 동물을 합사하는 경우 각 동물이 보유한 병원체에 서로를 노출시켜 질병 전파를 촉진시킬 수 있다.
동물에 입맞춤, 올라타도 제재 없어
체험을 운영하는 방식도 심각했다. 관람객이 동물의 신체부위를 입에 넣거나, 동물에게 입맞춤을 하는 행동이 빈번했는데 전혀 제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웨어 측은 동물의 체액, 분변 등을 통한 인수공통감염병 전파와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방식임에도 오히려 관리자가 이를 권장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13곳에서는 관리인원이 없는 공간에서도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체험이 가능해 관람객들의 행동이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한 관람객은 통로에 놓인 나무상자에서 전시되는 카피바라를 만지고 올라타려고 했지만 이를 통제할 관리인원은 없었다.
또 대부분의 업체에서 먹이의 종류와 양,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먹이주기 체험이 운영되고 있었고, 특히 먹이체험 중 돼지가 어린이의 손을 무는 사고가 관찰되는 등 펜스 안으로 직접 먹이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 사고의 위험성도 있다는 게 어웨어 측의 설명이다.
10곳의 업체에서는 라쿤, 미어캣, 양서파충류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판매ㆍ분양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가정에서 야생동물을 사육할 경우 적절하지 않은 사육환경과 영양공급으로 고통 받을 수 있으며, 유기 시에는 생태계 교란의 위험이 있다(본보 2월 3일자 13면).
동물원 허가제 바꾸고 불필요한 접촉 금지해야
12월부터 시행되는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과 해양수산부 장관은 보호하거나 관리할 필요가 있는 동물원 및 수족관이 보유하고 있는 생물종의 관리지침을 정해 동물원수족관을 운영하는 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침이 강제성이 없는 점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최소한의 사육환경과 관리에 대한 사항은 강제가 가능한 시행규칙 등으로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어웨어 측의 주장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설 소재지, 인력 현황 등의 요건을 갖춰 시도지사에 등록하도록 하는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정부가 허가 기준을 준수하면서 운영ㆍ관리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어 “동물과 관람객의 불필요한 접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불가피한 접촉 시에는 동물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장하고 질병 감염,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동물원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을 상세히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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