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6 등 영욕의 현대정치사 주역
충청권 맹주로 YS, DJ와 합종연횡
지역주의 경계, 상생정치 계승 필요
김대중(DJ)ㆍ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이로써 지역주의 정치를 상징하던 ‘3김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부침과 영욕이 교차했던 고인의 정치 역정에 대한 평가는 제 각각이겠지만 그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크고도 분명하다. 정치권은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를 경계하면서 고인이 남긴 메시지를 유념해 정치발전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고인만큼이나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다. YS나 DJ가 일생 민주화에 투신했던 것과 달리 JP는 5ㆍ16 군사쿠데타의 주역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산업화 시대의 선구자로 평가 받지만 대일 굴욕 외교의 낙인도 찍혀있다. 정부의 훈장 추서 방침에 “독재 권력에 부역하며 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며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평가의 연장선이다.
지역주의 정치 또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해 YS 집권의 물꼬를 트고 97년 DJ와 손을 잡는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에 기여했음에도, JP에게는 늘 ‘야합’ ‘처세의 달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어 영남의 YS나 호남의 DJ와 합종연횡을 거듭했지만 충청 독자 세력화 차원의 행보는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고인의 행보는 YS의 영남주의와 DJ의 호남주의를 공고화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 진영에서는 JP의 ‘자민련’을 보수 분열의 시작점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3김 시대 이후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가 점차 완화되던 가운데 공교롭게도 JP는 생전 마지막 정치 이벤트인 6ㆍ4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의 붕괴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사라졌다’며 JP의 별세를 한 목소리로 애도했다.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고인의 정치 역정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게 미루더라도 고인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DJ의 정치철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화민주당은 DJP연합에 의미를 두고 “고인은 DJ, YS와 함께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훈장을 추서키로 결정한 이유도 이런 정치권 평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인은 3김 시대의 유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지만 정치권은 JP가 걸었던 정치 역정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JP가 평생 주장해 온 내각제는 언제든 개헌 논의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핵심 의제다. 지역주의에 안주하다 지방선거에서 궤멸당한 보수진영에는 새로운 가치와 중심축을 만들라는 큰 과제를 남겼다. 특히 타협과 양보의 정치로 현대사의 고비고비를 돌파해온 고인의 정치 인생이 극한 대치의 현실 정치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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