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제주 혈 자리 끊은 ‘호종단’과 중국 자본의 난개발

입력
2018.06.24 09:00
0 0
중국의 풍수가 ‘호종단’의 전설이 전해지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중국의 풍수가 ‘호종단’의 전설이 전해지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얼마 전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제주도지사 후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던 주제가 중국 자본에 의한 난개발 문제였다. 외자유치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중국인 자본 투자, 그리고 그 결과 제주도 곳곳에서 진행되는 무분별한 대규모 개발사업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제주다움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제주도와 중국과의 관계는 옛날 이야기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오래됐다. 중국 진시황이 보낸 서복 일행이 불로초를 찾아 나섰던 삼신산 중 영주산이 바로 한라산이라는 것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과거 제주도에는 맹수가 많았는데, 중국에서 찾아온 스님이 한라산 골짜기에 몰아넣어 없애버리는 바람에 100골짜기가 아닌 99골(아흔아흔골)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왕이 ‘호종단(胡宗旦)’이라는 주술사를 보내 제주의 명당을 없앴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설은 대개 중국의 방해에 의해 제주인의 삶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원래 제주는 어려운 현실세계를 구원할 왕이 나올 땅이었는데 골짜기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혹은 명당자리를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에 왕도 나오지 않고 백성들의 삶이 그만큼 피폐해졌다는 인식이다.

호종단 전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지리서를 펼쳐놓고 보니 탐라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장수들이 심심치 않게 태어날 땅이었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아기장수들이 자라 천하를 통일하게 될 것이라 여긴 진시황은 풍수가 호종단을 보내 인걸을 낳을 명혈(明穴), 산혈(山穴), 물혈(水穴)을 모두 파괴할 것을 명한다.

서귀포 서홍동의 지장샘. 호종단의 화를 피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서귀포 서홍동의 지장샘. 호종단의 화를 피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처음 호종단이 도착한 곳은 현재의 구좌읍 종달리였다. 고종달이라고도 불렸던 호종단은 지명이 자신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에 불쾌함을 느껴 종달리의 ‘물징거’라는 물혈을 끊고 차례차례 명혈을 없애며 토산리에 이르게 된다. 호종단이 도착하기 직전, 토산리에서 밭을 갈고 있던 한 농부는 거슨새미(샘)와 노단새미의 물을 행기(놋그릇)에 떠다가 길마 밑에 잠시 숨겨줄 것을 간청하는 처녀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 뒤이어 나타난 호종단은 지리서에 적힌 ‘꼬부랑 낭 아래 행기물’을 찾지 못하자 농부에게 문의한다. 농부가 모른다고 답하자 호종단은 쓸모 없는 책이라며 지리서를 찢어버린 후 그곳을 떠났다. ‘꼬부랑 낭 아래 행기물’은 ‘구부러진 나무 아래의 행기물’이란 뜻으로 길마 밑에 있는 놋그릇 물을 가리키는 것인데, 호종단이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농부 앞에 나타났던 처녀는 노단새미와 거슨새미의 수신(水神)으로, 호종단의 화를 피한 두 샘은 다행이 남아서 지금도 물이 솟고 있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이야기는 서귀포시 서홍동의 지장새미에도 전해진다. 지리서를 찢어버린 호종단이 물혈을 잘 알아내는 개를 데리고 지장새미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개가 샘으로 향하지 않고 소의 길마 부근에서 맴도는 것이었다. 밭을 갈던 농부는 개가 자신의 음식을 탐한다며 쫓아버리고 호종단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며 개를 죽여 버린다. 지장새미의 수신이 길마 아래 숨었던 것인데, 호종단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지장샘 역시 지금까지 마을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와 반대로 산방산 앞 용머리의 경우 호종단에 의해 혈 자리가 파괴되는 운명을 맞는다. 전설에 의하면, 용이 승천하는 날 제왕의 능력을 갖춘 장군이 태어난다는 용머리를 호종단이 칼로 끊어버리자 그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산방산이 며칠간 울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전설이 그렇듯 용머리에 가서 보면 꼬리와 잔등 부분이 반듯하게 끊어져 있는데, 바로 호종단이 칼로 내리친 자국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 서쪽 끝 차귀도의 매바위.
제주도 서쪽 끝 차귀도의 매바위.
차귀도 전경.
차귀도 전경.

하지만 정작 제주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은 호종단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에 담겨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제주 광양당신(廣壤堂神) 이야기가 그것이다. 기록은 제주도의 지세를 누르고 배를 타고 돌아가는 호종단을 매로 변신한 한라산의 광양당신이 침몰시켰다고 전한다. 침몰 지점에 위치한 차귀도(遮歸島)는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은 섬이라는 의미다. 차귀도에는 매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도 있어 전설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호종단 전설을 통해 제주인의 의식을 짚어보면, 외세의 방해로 인해 그들의 삶이 척박해졌다는 것과 더불어 한라산신이 그 외세를 응징했다는 자존심이 엿보인다. 오늘날 제주도 곳곳에서 외자유치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파헤쳐지는 대자연을 보면서, 이 땅을 지키려 했던 한라산신의 재림을 간절하게 기원해 본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