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평양냉면 팬들에게 요즘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 시기다. 오늘날 ‘면스플레인’이라 불리는, 인터넷 블로거니 뭐니 하는 이들이 평양냉면에 대한 온갖 ‘썰’들을 풀어댈 때부터 일이 꼬였다. 여러 입맛을 맞추다 보니 까끌하던 면은 날로 부드러워지고, 육수는 조금씩 달짝지근해졌다. 인기가 많아지니 양은 줄고, 가격은 치솟았으며, 긴 줄을 기다려야 했다.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파문 이후엔 식사시간을 피해 빈 시간대를 공략해도 ‘짧다고 하면 안되갔구나’ 수준으로 늘어선 줄을 기다려야 한다. “소주 한잔 곁들여 가볍게 후루룩”하는, 평양냉면의 참 맛이 사라졌다.
‘진정한 평양냉면’이란 말은 ‘한 핏줄 순수 단일 민족’이란 말만큼이나 엉터리 같은 소리에 가깝다. 가격이 비싸지니 본전 생각이 나나 보다, 그래서 뭔가 자기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평양냉면에 엄청난 뭔가가 있는 것처럼 열 올려야 했나 보다 했다. 취향이란 게 적당히 허영 끼 있는 얘기고, 할 얘기가 마땅찮으면 날씨 얘기하듯 취향 얘기라도 하는 거 아니겠나. 모든 게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 위장 갉아먹는다는 찬 성질의 메밀을, 일제시대 때는 ‘아지노모토’ 따위 팍팍 무쳐서, 별미 삼아 찬 물에 훌훌 말아먹던 국수 따위, 제 입에 맞는 곳 찾아 기분 좋게 먹으면 그만이지, 대체 저게 뭐라고 말이다.
그런데 기어코 ‘냉면의 품격’이란 책까지 나와버렸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면ㆍ국물ㆍ고명과 반찬ㆍ접객과 환경ㆍ총평 등 다섯 분야로 나눠 별점을 매긴 평가 겸 안내서다. 우래옥, 의정부ㆍ을지ㆍ필동 면옥, 장충동, 을밀대를 시작으로 봉피양, 강서, 평가옥, 평래옥을 찍고 능라도, 정인, 동무밥상에 이어 무삼과 광화문국밥, 장원막국수까지 30여 곳이다. 냉면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봤거나 들어봤을 곳들이다.
냉면의 품격 이용재 지음 반비 발행ㆍ168쪽ㆍ1만2,000원역시나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개인적으론 오류동이 빠진 게 놀랍다. 정인면옥은 책에 실린 여의도보다 광명이 낫다. 능라도 역시 판교가 좋다. 서울로 진입하면서 너무 고급 고깃집처럼 콘셉트를 잡았다. 인천 평화옥까지 갔다면 경인면옥 정도는 들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광화문국밥의 냉면도 괜찮다지만, 그게 ‘평양냉면의 미래’인줄까지는 잘 모르겠다. 슬쩍 봐도 이 정도라면, 맛 좀 안다는, 냉면 좀 먹어봤다는 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할 게다. 반쯤 농담 삼아 낄낄대는 ‘아저씨들의 면스플레인 놀이’란 이런 거 아니던가. ‘면스플레인 지옥’에 뒤늦게 굳이 또 하나의 면스플레인을 첨가해야 할 이유는 뭘까.
짐작 가는 바는 있다. 제목의 ‘품격’이 힌트다. 이제 제법 비싼 돈을 내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으니 시장통 같은 느낌 대신 제법 근사하게 차려내고 먹을 줄도 알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다. 그래선지 격식을 갖춘 듯한 냉면집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론되고, 또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의 본질은 결국 안내, 평가가 아니라 촉구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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