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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떠나보낸 후... 할머니 마음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입력
2018.06.22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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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교출판사 제공
꿈교출판사 제공

그림책은 ‘보여 주며 말하여’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말할지 고심하여 이미지와 언어 사이에 생각과 마음을 심어 놓는다. 고심의 흔적을 찾아 작가의 의중을 캐내어 보는 것은 그림책을 감상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 탐색의 시선은 대개 이미지를 좇는다. 선과 색과 형과 그것들의 위치와 구도와 관계를 살펴 숨은 뜻을 읽는 것이다. 지시하는 것이 명료하나 뜻하는 바는 열려 있는 것이 이미지이니, 유효한 방법이다. 그런데 뜻하는 바가 명료해 보이는 언어 또한 왕왕 숨은 뜻을 품는다. 시인의 언어는 더 그렇다.

이 그림책은 일본의 작고한 시인 오사다 히로시가 쓰고 원로 화가 오하시 아유미가 그렸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간결하고, 그것을 보여 주는 그림은 천진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말하는 글의 시제는, 뜻밖에도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다.

꼬리가 긴 오렌지색 고양이와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고양이는 할머니의 ‘고양이였다’. 할머니는 늘 고양이와 ‘함께이다’. 꽃을 손질하며 할머니가 이야기하면 고양이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깊은 밤, 할머니가 곤히 잠들면 고양이는 멀리 밖으로 ‘나간다’. 고양이는 밤 마실을 즐기다가 아침이 올 즈음이면 언제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날, 고양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가고, 할머니가 밤하늘의 별을 다 셀 때까지도. 다음 날 아침에야 고양이는 차에 치여 죽은 채 작은 여자아이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고양이를 뜰에 ‘묻었다’. 계절이 지나고 봄이 오자 작은 싹이 나오더니, 금세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뻗어 초록 잎 무성한 나무가 ‘되었다’. 할머니가 꽃 손질을 하다가 올려다보니 오렌지색 열매 하나가 열려 ‘있었다’. 화분의 꽃들이 한꺼번에 활짝 핀 어느 날 아침, 크게 자란 열매가 톡 ‘떨어졌다’. “세상에나!” 할머니가 주워 안아 들고 보니 귀여운 오렌지색 아기 ‘고양이였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인은 친절하게도 이 ‘신기한 나무’의 원관념을 마지막 문장으로 정리해 주었다. “마음의 뜰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할머니의 꿈 나무입니다. 고양이 나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시제 일치’를 지키지 않은 걸까?

꿈교 출판사 제공
꿈교 출판사 제공

주인공 할머니와 처지가 비슷한 이들을 떠올려 본다. 늘 함께이던 아이를 갑자기 떠나보낸 사람들. 그들은 몇 해가 지나도록 아이의 방을 비우지 않고 아침저녁 방문을 열어 “일어났니?” “잘 자거라” 인사를 건넨다. 아이의 옷가지를, 가방을, 사진 속 얼굴을 어루만지며 오늘 하루 지낸 이야기를 생시인 듯 들려준다. 끼니마다 비워지지도 않을 밥과 국을 떠 식탁의 빈자리에 놓아둔다... 아! 그들의 시제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 그이들을 대하는 세상을 떠올려본다. “과거는 그만 잊고 오늘을 살아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부드럽든 거칠든 ‘시제 일치’를 종용하는 목소리다. 어? 평생 언어를 매만지며 살아온 시인이야말로 ‘시제 일치’의 논리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인간사, 과거로 보내야 할 것과 현재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보내야 할 것이 집요하게 머물고, 지켜야 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럴 때 삶은 시제가 틀어진다. 어떤 삶은 시제 일치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논리적인 종용일까?

고양이 나무 오사다 히로시 글∙오하시 아유미 그림∙황진희 옮김 꿈교출판사 발행∙32쪽∙1만2,000원

시인은 할머니의 뒤섞인 시제를 이해하며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다려 준다. 죽은 고양이를 가만히 묻고 계절을 보내도록, 뜰에 난 작은 싹이 무럭무럭 자라 멋진 나무가 되도록, 그리하여 예전처럼 뜰에서 꽃 손질을 하다가 그 신비한 나무를 올려다보도록, 초록색 나뭇잎 사이로 열린 오렌지색 열매를 발견하도록. 그리고 마침내 손질하던 꽃들이 한꺼번에 활짝 핀 아침, 크게 자란 열매가 톡 떨어졌을 때 그것을 안아 들고 “세상에나!” 그것에서 귀여운 아기 고양이를 볼 수 있도록. 이제는 고양이를 보고도 슬퍼하지 않으며 자신의 ‘꿈 나무’-‘고양이 나무’를 가꾸어 갈 수 있도록.

김장성 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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