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검찰과 경찰이 황창규(65) KT 회장의 구속영장을 두고 맞붙었다. 검찰이 경찰의 부실 수사를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고 보강 수사를 지휘하자, 경찰은 검찰이 황 회장을 불구속 수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리면서 ‘지적질’만 한다고 반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20일 전ㆍ현직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정치후원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경찰이 신청한 황 회장 등 전ㆍ현직 KT임원 4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정치자금 공여자 측 공모 여부에 대해 다툼이 있고, 구속할 만한 수준의 혐의 소명을 위해 금품 수수자 측 조사가 상당 정도 이뤄질 필요가 있는데,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었음에도 현재까지 수수자 측 정치인이나 보좌진 등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18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 혐의로 황 회장과 구모(54) 사장, 맹모(59) 전 사장, 최모(58) 전 전무 등 홍보ㆍ대관담당 부문 전ㆍ현직 임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들이 2014년 5월~지난해 10월 회삿돈으로 상품권을 사들였다가 되파는 ‘상품권깡’ 수법을 동원해 비자금 11억5,000여만원을 만들고 이 중 4억4,190만원을 전ㆍ현직 국회의원 99명(중복 인원 제외)에게 후원한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계좌추적 등으로 법인이나 단체가 정치인에게 후원할 수 없다는 정치자금법 위반이 명백히 소명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검찰 기각에 즉각 반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KT측을 처벌하겠다는 것이고 정치인에 대한 조사는 KT관계자들의 양형에 영향을 미칠 뿐 KT위법행위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의원실에 대한 조사도 앞으로 하겠다고 밝혔고, 의원실 처벌 여부는 그 이후에 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오히려 검찰이 보낸 수사지휘서에 ‘황창규 회장 등 4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 “불구속 송치 지침을 내린 것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했고, 검찰은 ‘현 단계에선 구속할 만한 상황이 아니니 영장을 재신청할 만큼 추가 수사하라는 의미”라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통상의 금품수수 사건에서 금품을 준 쪽뿐만 아니라 받은 쪽 수사를 상당 부분 한 후에야 영장 청구나 기소가 이뤄지는 만큼 경찰이 금품 수수자 수사를 미룬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품 수수자에 대한 수사 없이 공여자 조사만으로 영장을 칠 경우 거의 100% 법원 기각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이 때문에 경찰이 여야 정치권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조성될 것을 우려해 7개월여 수사 기간 동안 정치인 조사를 일부러 미룬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실제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여 사실 자체를 인정했음에도 검찰이나 특별검사팀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수 차례 시도하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최순실씨 등을 수십차례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황 회장 등에 대한 보강 수사 후 영장 재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