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전격적으로 3차 방중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과 만찬을 포함해 짧은 기간 강도 높은 일정을 소화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번 방중을 통해 ‘은둔의 독재자’에서 실리외교를 추구하는 정상국가 지도자로의 이미지 변신을 적극 꾀하는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과 40여일만에 다시 만나 정상회담과 만찬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와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 간 재회도 이뤄졌다. 이날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6ㆍ12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중국의 지지와 협조를 요청했다. 시 주석은 북한의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 방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거듭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은 “정세가 바뀌어도 북중관계와 북한에 대한 지지는 변함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공고한 북중관계를 과시했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쌍중단(雙中斷ㆍ북한의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체제 전환 동시논의) 방침에 대해 의기투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 간 세번째 만남에는 북측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북미 회담 성사의 주역인 김영철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중국 측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과 왕후닝(王滬寧)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 등 양국 핵심실세들이 총출동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전용기인 ‘참매1호’를 이용해 베이징 서우두(首都)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중국 국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만남에 앞서 왕 서기를 비롯한 중국 측 고위인사를 만나 현안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비슷한 시각 김 위원장 방중 수행단에 포함된 경제분야 인사들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중국의 4차 산업혁명 관련업체들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말 1차 방중 당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을 둘러보며 적극적인 개혁ㆍ개방 의지를 내비쳤던 김 위원장은 20일 오전에 또 다른 첨단산업 현장을 시찰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3차 방중단은 이전보다 규모가 커졌고 공항 도착과 이동 때엔 이전 두 차례 방중 때와 마찬가지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공항에선 김 위원장이 타는 전용차량을 의미하는 휘장이 새겨진 VIP 차량이 2대 목격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동행했음을 실감케 했다. 또 고급승용차 10여대와 미니버스 10여대, 구급차량, 식자재를 실은 차량까지 뒤따랐다. 중국 정부는 공항은 물론 인민대회당이 있는 톈안먼(天安門) 인근과 댜오위타이로 가는 길목 등에 무장경찰차와 공안을 촘촘히 배치하는 등 철통 호위에 나섰다.
이날 오전 김 위원장 방중 소식이 최초 알려졌을 때는 지난 10일 북미 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비행기에 탔는지를 놓고 잠시 혼선이 일었다. 당초 김 위원장이 국내 시찰 때 이용하는 안토노프(An)-148 기종인 고려항공 251편 특별기를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됐지만, 항공정보 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에서 참매1호 기종인 IL-62M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별기와 화물기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10시(현지시간)께 참매1호를 통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1차 방중 때와 마찬가지로 리 여사와 함께였다.
김 위원장 동선을 따라 철통 경호가 펼쳐지긴 했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한 지 30여분만에 중국 관영매체들이 방중 소식을 공식 보도했다. 김일성ㆍ김정일 때는 물론 김 위원장의 1,2차 방중 때도 북한으로 돌아간 뒤에야 방중 사실을 확인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을 정상국가의 지도자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 대해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을 향해 보란 듯 밀월관계를 과시함으로써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실질적인 대북제재 완화 효과를 거두기 위한 실용적 외교”라고 평가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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