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뜻을 알려주는 광고가 왜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대학생 조모(23)씨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인근 버스정류장에 페미니즘 옥외광고를 설치하려고 심의를 의뢰한 건데, “반려가 될 수 있다”며 담당 직원이 생각지 못한 말들을 쏟아낸 것이다. 조씨가 제출한 광고 시안은 흰 바탕에 ‘우리는 페미니스트입니다’ 문구와 간략히 페미니즘 뜻을 적은 게 전부. 그는 “담당 공무원이 ‘페미니스트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가’ 여러 차례 물었다”라며 “공무원들 인식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했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조씨는 구청이 사실상 ‘광고 심의를 통과시켜줄 뜻이 없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구청 관계자는 “페미니즘은 어느 한쪽이 가진 신념이며 반대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청 옥외광고심의위원회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광고의 갈등 야기 가능성을 강조하며 난색을 표한 것이다.
모든 옥외광고는 시ㆍ구청 옥외광고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만 게재가 가능한데 주로 광고의 크기와 조도 등 기술적인 부분만 검토한다. 문구를 근거로 옥외광고를 반려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얘기. 조씨는 “이것 역시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ㆍ페미니즘에 적극 반대하는 현상)”라고 꼬집었다.
다른 구청들은 페미니즘 옥외광고로 민원이 발생할까 봐 노심초사한 경험들이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페미니즘 광고에 대한 민원이 계속해 들어오면 광고 게재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등포구청 또한 취재가 시작되자 “다음달 열릴 옥외광고심의위원회를 거쳐 승인을 해 줄 것 같다”면서도 “다만 민원이 다량 들어오면 광고 게재를 철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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