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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독일함대 자침(6.21)

입력
2018.06.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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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독일함대 자침 직후의 영국 스캐퍼플로 군항.
1차대전 독일함대 자침 직후의 영국 스캐퍼플로 군항.

자침(自沈, Scuttling)이란 특별한 목적으로 선박을 자진해서 침몰시키는 걸 말한다. 1984년 서산 천수만 간척사업 당시 고 정주영이 조수간만과 빠른 물살로 흙이 유실되면서 공사가 지연되자 30억원짜리 대형 폐유조선을 물막이로 가라앉힌, 이른바 ‘정주영 공법’도 그 예다. 하지만 자침은 적선의 침입을 막는 해상 방어 등을 위해 11세기 바이킹 시대서부터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더러 쓰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규모 자침이 1919년 6월 21일 1차대전 독일 대양함대에 의해 이뤄졌다. ‘스캐퍼플로(Scapa Flow) 자침’이다.

1918년 11월 휴전협정을 맺은 연합국의 현안 가운데 하나는 독일 해군의 무장 해제였다. 최강 영국에 버금가는 독일의 막강한 전함들이 거의 전력 손실 없이 남아 있었고, 프랑스와 스페인 등이 거기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앙숙인 영국으로선 그 해법을 못마땅해 했다. 협상은 장기화했고, 그사이 독일 전함 74척은 스코틀랜드 북부의 군항 스캐퍼플로에 끌려와 최소 승조인원 1,700여명만 남긴 채 영국 해군의 감시하에 있었다. 하지만 포로가 된 함대를 지휘한 독일 해군의 루드비히 폰 로이터(Ludwig von Reuter, 1869~1943) 제독(소장)은 배들을 인계할 의도가 없었다.

로이터는 6월 21일 영국 해군이 작전을 나가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함대에 자침 명령을 내렸다. 오전 11시 20분 전함의 해수밸브가 열렸다. 정오 무렵 배들이 가라앉는 것을 알게 된 영국 해군은 부랴부랴 부대로 복귀해 자침을 막았지만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 주력함 15척과 순양함 5척, 구축함 32척이 가라앉았고, 자침을 막는 과정에서 독일병사 7명이 사살당했다. 나머지는 모두 구조돼 수용소에 갇혔다.

스캐퍼플로 자침으로 연합국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숙제를 덜었고, 로이터는 독일 해군의 기개를 드높인 군인으로 독일 시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1920년 독일로 귀환, 포츠담에 정착해 브란덴부르크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2차대전 독일 해군은 1939년 10월 14일 U-47 잠수함으로 스캐퍼플로를 기습, 영국 전함 로열 오크(HMS Royal Oak)를 침몰시키는 것으로 설욕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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