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까지 운영허가를 받은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가 조기 폐쇄된다. 설계ㆍ용지 매입 단계에서 중단된 신규 원전 4기 건설도 백지화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조기 폐쇄 이유로 “경제성 악화”를 들었다. 하지만 여당이 압승한 6ㆍ13 지방선거 직후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해 결정했다는 점에서 국민의 지지를 확인한 문재인 정부가 논란이 많은 탈원전 공약 이행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수원은 15일 이사회를 소집해 경북 경주 소재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천지 1ㆍ2호기와 대진 1ㆍ2호기 등 총 4기의 신규 원전 계획도 취소했다. 12명이 참석한 이사회(13명 정원)에서 월성 1호기 폐쇄 안건은 11명 찬성, 1명 반대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는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재훈 사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긴급 경영현안설명회를 열고 “월성 1호기는 발전단가(1㎾h당 120원ㆍ지난해 연말 기준)가 판매단가(60원)보다 두 배 높은 적자 발전소여서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여러 차례 안전성 강화 조치가 이뤄지면서 발전단가가 높아지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 “월성 1호기가 국내 전력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6%로 매우 낮아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지화 대상 신규 원전 6기 중 신한울 3ㆍ4호기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검토를 거쳐 다룰 계획”이라고 밝혀 추가 취소 가능성을 열어뒀다.
월성 1호기 폐쇄는 예견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월성1호기는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해 12월 내놓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올해 전체 발전용량에서 월성 1호기의 설비용량을 제외했다.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2012년에 30년 수명이 다했지만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 11월까지 수명을 연장했다. 현재는 정기점검절차인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가동이 멈춘 상태다. 용지 매입이 약 19% 완료된 천지 원전(경북 영덕 소재)은 지정고시 해제 후 토지매각을 추진한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수명이 끝나는 월성 2~4호기도 폐쇄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원전을 더 짓지 않고, 지어진 것을 안전하게 관리하며, 수명이 다 된 것은 조속히 닫는다”는 ‘탈원전 3대 원칙’을 선언했다.
월성 원전 1~4호기 폐쇄는 남ㆍ북ㆍ미가 최근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와도 관련이 있다. 다른 원전과 달리 월성 원전은 중수로형이어서 여기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김익중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동국대 의대 교수)는 “후쿠시마 사태 때도 그곳에 있었던 원전 10기 중 30년 넘은 노후 원전만 폭발했다”며 “일반 원전보다 훨씬 위험한 노후 원전을 조기 폐쇄한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송종순 교수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내 원전 산업 축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수천억 원의 혈세를 투입해 수명 연장한 원전을 조기 폐쇄한 것을 두고는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수원 노동조합은 “수명연장 이후 5,600억원을 투자해 노후설비 교체ㆍ안전보강 등을 마쳤음에도 조기폐쇄를 결정한 건 불합리하다”며 “배임 혐의로 이사회를 고소하는 등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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