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의 유산과 씨름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토지 정의’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시릴 라마포사(66) 남아공 대통령이 백인 부유층에 집중된 농지를 무상 몰수해 흑인 소작농들에게 재분배하는 법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이를 둘러싼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남아공 라마포사 정부와 집권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최근 농지 재분배 개혁에 속도를 내면서 흑인 사회와 백인 이익단체 간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과거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전체 인구 8%의 백인들이 약 73%의 농지를 소유하게 된 구조를 뒤엎기 위해 토지 무상 몰수에 관한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4개월에 접어든 라마포사 대통령은 “토지 개혁은 남아공의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 과제”라며 “잘 추진된다면 나라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분노를 재생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남아공의 토지 빈부격차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흑인의 토지 소유 자격을 박탈한 이후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흑인 농부들이 농지를 취득하지 못해 백인 소유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거주하게 되면서 ‘백인 지주ㆍ흑인 소작농’ 구조가 굳어졌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기됐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민감한 토지 소유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ANC는 “백인 소유 농지의 30%를 흑인 지분으로 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는 8%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흑인 소작농들의 토지 소유권 분쟁을 돕는 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소작농들은 여전히 집을 확장할 수도 없고, 손님을 초대하거나 3마리 이상의 염소를 키우고자 할 때도 땅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농지를 둘러싼 주종 관계는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흑인 농민들은 기대감에 휩싸였지만 백인 사회에서는 벌써부터 반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백인 이익단체들은 무상몰수 법안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남아공은행연합(SABA)을 비롯한 재계에서도 “아무런 보상 없이 토지를 몰수할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뿐 아니라 국가 부채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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