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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외모강박] 불편사항에 ‘승무원 못생겼다’ 쓰는 승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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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외모강박] 불편사항에 ‘승무원 못생겼다’ 쓰는 승객들

입력
2018.06.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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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기 없는 얼굴은 건강하지 않게 보이므로 생기 있는 메이크업으로 나를 단장한다. (중략) 립스틱은 누드톤 또는 너무 진한 색상은 피하고 핑크나 오렌지 계열로 화사하게 연출한다. (마스크 착용시에는 립스틱이 지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틴트 제품을 이용)”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이같은 내용의 ‘의료인 용모 매뉴얼’을 내부검토해 논란을 빚었다. 해당 매뉴얼은 의료인의 자질과 무관한 세부사항을 조목조목 표기한 데다, 유독 여성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도마에 올랐다.

이를테면, 립스틱의 권장 색상을 규정하는 것은 물론 ‘웃을 때 돌출되는 뺨 부위를 핑크색이나 오렌지색 블러셔로 생기 있게 표현한다’라거나 ‘근무 시간 중 최소 한 번은 수정메이크업을 해 생기 있는 얼굴 연출’을 하라는 식이다. 남성 용모 복장의 기준은 ‘매일 면도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코털이 밖으로 나와 있지 않은지 항시 체크한다’ 등으로 위생상태를 점검하는 수준인 것과 대조적이다.

여자는 의사도 알바도 화장필수?

의사들이 펄쩍 뛴 것은 당연지사다.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해당 병원에 의견서를 보내 “인권침해적이고 성차별적인 매뉴얼을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또 “의료인으로서 감염관리 등과 관련해 합리적인 복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해당 매뉴얼은 의료인을 ‘화사하게’ 단장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성차별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매뉴얼은 제작이 중단된 상태다. 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제작 단계에 있던 미완성 자료, 즉 초안이 공개되면서 오해를 일으켰다”며 “해당 매뉴얼 제작이나 적용은 최근까지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이 거듭 “하나의 해프닝”, “애초에 적용 계획이 없었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해당 사태는 여성들은 일터에서 전문성 말고도 또 하나의 덕목을 요구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얼굴에 화사함 정도는 갖추고 나오는 예의’다.

이런 엄격한 잣대는 서비스직 및 판매직 노동자들에게는 이미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심미노동(Aesthetic Labor)을 연구해 온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심선희 박사는 “공식적인 용모중심 채용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외적 스타일을 업무 필수요소로 강조하는 수준은 더 심해졌다”며 “특히 호텔 등 고급서비스를 표방한다는 공간일수록 외모를 업무에 꼭 필요한 필수 기술이나 능력처럼 여기는 인식이 공공연하다”고 지적했다.

“예식장에서 여성의 외모와 남성의 경제력이 교환되는 현상이 과거에 특히 두드러졌고, 현재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황 속에서 여성의 기본가치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은 외모평가를 통해 이뤄지는 거죠. 노동의 장에서도 반복되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기업이 노동자의 화장법, 머리 모양, 복장, 손톱, 액세서리류 등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규정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업무의 일환, 업무 능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화(면세)점 판매직 노동자에 대해 연구한 심 박사의 논문 ‘미적 노동, 신체의 동원과 개발’(2013)에 따르면 적잖은 입점 브랜드들이 직원의 복장, 머리색, 머리 스타일, 신발 굽 높이, 스타킹 색상, 손톱 길이와 색상, 액세서리의 종류를 규제하며, 안경착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2017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거나 립스틱 검사 등 용모 기준을 적용한 사업장은 외식업체, 영화관, 피시방 등으로 다양하다. 민우회 조사에 참여한 한 응답자는 “결막염에 걸렸을 때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안경을 써야 했는데 그조차도 당일 관리자가 노발대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승무원에게 ‘못생겼다’ 항의

항공기 승무원, 아나운서 등 특정 직군에서는 아예 채용 단계에서부터 까다로운 외모 기준이 적용되며 근무 시간에도 ‘안경 착용 자제’ 등의 엄격한 관행, 금기가 통용된다. 한 국내 항공사의 내규는 헤어, 안경, 화장, 유니폼부터 치아상태에 이르기까지 외모에 관해서만 100여 개의 세부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안경은 금지하고, 시계는 반드시 특정 색상으로 착용해야 하며, 스커트를 입을 때는 실루엣을 고려해 허리선을 지나치게 올려 입어선 안 된다는 식이다.

14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노조 관계자들은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이미 승무원이나 기내 서비스를 떠올릴 때 외모를 판단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항공사의 문제로만 보긴 힘든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류호분 부위원장은 “승객 불편사항에 ‘승무원이 못생겼다’고 적는 승객이 있는가 하면. 이름을 외웠다가 ‘뚱뚱해서 나를 치고 가더라’고도 한다”며 “주변에서 서비스의 질에 대해 논할 때도 주로 ‘어느 항공사가 제일 예쁘더라’는 데만 관심을 갖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회사 규율이 아니더라도 승무원들은 노동시간 내내 승객들에게 외모 감시를 당하는 셈이다. 김효정 여성국장은 “손톱 색상의 경우 승객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항이 아닌데도 ‘제가 아는데 이런 색 바르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항의하는 승객도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모에 대해 늘 고민하고 동료들을 봐도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너 살 빠졌네’, ‘나 부은 것 같아’ 등”이라고 말했다.

안팎으로 당하는 이런 외모감시 탓에 승무원들은 더욱 자신을 옭아맨다. 오중현 객실지부장은 “외모에 대해 항의한 뒤 다른 서비스를 요구하는 승객까지 있는 형편”이라며 “(마른 실루엣을 위해) 유니폼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을 유니폼에 맞추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비스의 개념을 노동자의 외모에 대한 것으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 깔끔한 수준을 넘어 머리가 깃에 닿으면 안 된다는 등의 세부사항까지 고객의 불편 사항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제공사항으로 봐야 하는지, 사실 의문이죠."

개인 인식 먼저 개선돼야

이런 엄격한 자기감시와 통제는 일상에도 쉽게 전염된다. 한 국내 항공사의 10년 차 현직 승무원은 “평소 조금이라도 식사를 많이 하고 나면 유니폼이 안 맞을까 바로 후회한다”며 “큰 사이즈 유니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빼빼 마른 동료들 사이에서 그런 옷을 입고 서 있으면 정말 도드라진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런 국내 항공사 여성승무원의 유니폼은 업무용 복장이라기 보다는 모델 워킹, 즉 쇼를 위한 쇼복에 가깝다”고 했다.

심 박사는 “우리가 노동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데 그 공간에서 이렇게 일정하고 과도한 방식으로 몸을 가꾸고 다루는 법을 훈련하다 보면, 이 기준은 개인에게 습관이 되고 체화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뿐 아니라 불편사항에 ‘못생겼다’를 적어내는 진상 손님도 돌연 땅 위에서만 타인을, 특히 여성을 존중하는 인격이 샘솟을 리 만무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작은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제주항공이 올해 4월 말부터 ‘객실승무원 서비스규정’ 일부를 변경해 안경 착용과 네일아트를 허용한 것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네일 아트의 경우 승객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스쳤을 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과한 큐빅 등을 뺀 모든 색의 사용이 가능하다”며 “기내가 건조하고 야간 비행 때 눈이 피로했던 승무원들이 선택지가 늘어나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직 승무원들이 호소하듯, 더 큰 변화는 개인과 사회 인식의 개선이 선행돼야만 가능하다. 심 박사는 “심미노동 현상 자체는 문제를 지니지만, 이윤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상 구매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는 것만 문제를 삼을 순 없다”며 “우선은 나 자신, 우리 개개인이 이미 외모요소에 대한 규범을 내재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잖아요. 자신의 기대에 조금만 맞지 않으면 거센 항의를 한다거나. 갑질 논란이 나올 정도로요.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의 태도를 점검하지 않는 한, 기업의 변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이 나도 모르게 ‘여기서 내가 쓰는 돈이 얼만데, 고객응대는 화사하게 단장한 미인(미남)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괴물은 아닌지, 먼저 돌아보라는 얘기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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