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13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커녕 기초단체장 1석도 차지하지 못한 바른미래당이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현실적 목표로 삼았던 서울시장 선거 2위, 정당 득표율 2위 역시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당의 존립마저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애초부터 정체성이 달랐던 두 당이 만나 끊임없이 갈등을 노출해 온 만큼,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시 갈라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바른미래당 창당을 주도한 ‘당의 간판’ 유승민 공동대표와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14일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나란히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유 공동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 선택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나 성찰의 시간을 갖고,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며 “처절하게 무너진 보수정치를 어떻게 살려낼지, 보수정치 혁신의 길을 찾겠다”고 했다. 유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계속해서 제기됐던 자유한국당과의 당대당 통합 가능성에 대해서는 “폐허 위에서 적당히 가건물을 지어서 보수의 중심이라고 얘기해서는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제대로 집을 짓기 위해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조차 밀리며 서울시장 선거를 3위로 마감한 안 후보도 고개를 숙였다. 안 후보는 이날 서울 안국동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좋은 결과를 갖고 이 자리에 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게 돼 너무 송구하고 죄송하다”며 “모두 후보가 부족한 탓”이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안 후보는 이번 주말 딸 설희씨의 학위 수여식 참석 차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이후 거취에 대해 “당분간 성찰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며 “돌아보고 숙고하겠다”고 밝혔지만, 당분간 미국에 머무르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바른미래당은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이란 목표를 내걸고 지난 2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을 통해 탄생했다. 사실상 6ㆍ13 지방선거에 대비해 창당 작업을 서두르다 보니 당의 정체성 확립이나 화학적 결합 같은 중요 작업은 후순위로 밀렸다. 이 바람에 계파 간 첨예한 공천 갈등을 빚었고, 유권자들에게는 당의 색깔을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했다.
유 공동대표의 사퇴로 당분간 바른미래당은 박주선 공동대표가 홀로 이끌며 충격을 추스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대로는 한국당이 몰락하면서 커지고 있는 보수진영 개편 요구를 견디기 쉽지 않다. 결국은 유 공동대표가 보수 재건을 강조하며 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 경우 박 공동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은 “한국당과의 통합은 절대 없다”고 공언해온 만큼 구 바른정당과 구 국민의당 진영 대립으로 결국은 분당 사태에 접어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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