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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시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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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시의 품격

입력
2018.06.14 11: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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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이 들어왔다. 민원인 앞에서 어깨가 낮아지는 게 건축가이긴 하지만 이번엔 자세가 꼿꼿해졌다. 두 장짜리 보고서로 정리된 민원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민원 보고서는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공사 중인 건물이 벽돌건물인데, 벽돌 마감공법은 과거 1980년대 공법으로 품질이 떨어지고 도시 미관을 저해하여 차후 임대 및 분양에 많은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주변 건물의 집값이 동반 하락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도로 쪽에는 석재로 마감하고 안 보이는 면에는 저렴한 스톤코트로 했으면 좋겠다.’

몇 가지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소유주의 건물 디자인에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당당하게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가 바꾸라고 하는 디자인-앞부분만 돌을 붙이고 옆과 뒤쪽은 드라이비트로 마감-의 건물이 벽돌로 마감한 건물보다 더 비싸 보인다는 생각도 이해할 수 없다. 동네 집값은 내가 지킨다는 과도한 책임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발코니에 이불도 널지 말라고 떠드는 아파트 부녀회장이 있다고 하더니 그 꼴이다.

주말부터 모 국회의원의 ‘부천, 인천 비하 발언’ 때문에 시끄러웠다. 20년 넘게 부천에 살고 있는 부천시민으로서 화가 많이 났다. 문제의 발언 자체보다는 도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기저에 도시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게 한심했던 것이다.

25년 전, 더 넓고 편리한 집을 원했던 부모님은 부천 중동신도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부천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왔다. 이사하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며칠 내내 짐을 싸느라 피곤했고 친구들과 친척들이 이사를 도와주러 왔다. 지나가던 사람과 아버지가 작은 다툼도 있었다. 아버지가 남과 싸우는 걸 처음 봤다. 그렇게 부천과 인연이 맺어졌고 여전히 그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 첫 출근날 아버지가 닦아주신 구두를 신고 으쓱해서 나섰다. 막내누나의 함이 들어오던 날엔 예비매형과 대작하느라 못 마시는 술을 엄청 마셨다. 조카들은 올 때마다 몰라보게 쑥쑥 자라 있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아내를 맞았다. 나와 가족의 삶이 이 집과 연결되었고, 나의 30대와 40대는 이 도시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보냈다.

나는 이 도시가 더없이 소중하다. 내가 변화해온 만큼 도시도 변했다. 성장하고 보기 좋아지고 감동을 주는 곳이 되었다. 송내역 앞엔 그 넓은 광장을 완전히 비우고 잔잔한 물을 채운 수변공간이 있다. 고요한 도시의 풍경이 물 위로 반사되어 도시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곳 중 하나다. 나는 자주 걸음을 멈추고 물 위에 비친 도시를 바라보곤 한다. 나처럼 85만의 부천시민은 85만 개의 기억과 사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벽돌민원이나 부천에 대한 망언의 배경에는 ‘부동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집값만이 유일한 가치고 절대적이며 모든 판단 기준이라는 생각. 부동산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취향이나 생활방식 따위는 가차 없이 매도해도 된다는 생각. 디자인의 가능성도, 사람이 살아온 인생도 다 쓸모없고 오로지 집값만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그 생각.

도시의 품격은 그런 것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들은 도시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도시와 감정적 연결을 가져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 비싼 곳으로 간다고 과연 마음이 채워질까. 사람과 공간은 그렇게 연결되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공간의 경험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도시의 품격은 시민 한 명 한 명의 기억과 경험이 공간과 연결되고 쌓여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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