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사람이 (주책이라고, 주책이 없다고) 속으로 욕하는 건 아니겠지?”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지만 둘 다 맞는 말이다. ‘주책(主着)’의 본뜻이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임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혼란스러울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에게도 ‘주책을 부리다’, ‘주책을 떨다’, ‘주책이 심하다’ 등은 이미 자연스럽다. ‘주책’이 관습상 ‘없다’와 자주 결합해 쓰이다 보니, ‘주책’에 ‘일정한 생각이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이란 뜻이 스며든 것이다. 결국 ‘본뜻’과 ‘관습적인 맥락의미’ 중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주책이 없다’와 ‘주책이다’를 같은 뜻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가 떠날까 봐 (안절부절했던, 안절부절못했던) 때가 있었다”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안절부절’의 뜻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임을 떠올린 사람은 ‘안절부절했던’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안절부절못했던’이 맞는 말이다. ‘안절부절’이 부정적인 상황에서만 쓰이다 보니, ‘안절부절’과 ‘못하다’의 결합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에서도 ‘본뜻’과 ‘관습적인 맥락 의미’의 쓰임이 팽팽한데, 언어규범에선 일찍부터 ‘관습적 맥락 의미’의 우위를 선언했다. ‘조선어사전’(1938)과 ‘큰 사전’(1957)엔 아예 ‘안절부절못하다’란 결합형만 올림말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안절부절못하다’가 ‘안절부절하다’를 압도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큰 사전’ 편찬의 주역이었던 이윤재의 ‘표준조선말사전’(1947)에선 ‘안절부절하다’만을 올림말로 삼고 있다. 규범의 판을 뒤흔들 만큼 ‘본뜻’을 의식하는 힘이 강했던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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