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중에 월드컵에서 꼭 다시 만나자”
1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삽산 아레나. 등판에 영문으로 각각 ‘리’와 ‘김’이 새겨진 두 친구가 사이 좋게 패스를 주고 받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면 제일 먼저 서로에게 다가가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쉬는 시간에도 둘은 꼭 붙어있다. 한국에서 온 김찬우(12)와 북한에서 온 리대권(13)은 ‘2018 풋볼 포 프렌드십(Football 4 Friendship) 챔피언십’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고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이 후원하는 이 대회는 전 세계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모여 화합을 다지는 연례 행사다. ‘축구로 하나가 되자’라는 기치 아래 전세계 211개국에서 만 12세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모였다. 6명씩 한 팀을 이뤄 토너먼트 대결을 펼친 이날 대회에서 한국 대표 김찬우와 북한 대표 리대권은 ‘금발 카푸친’팀 유니폼을 입고 호흡을 맞췄다.
둘은 남북을 대표하는 에이스다. 축구 명문 남양주 진건초 6학년인 김찬우는 스카우터들이 ‘랭킹 1위’라고 입을 모으는 특급 유망주다. 리대권은 북한 최고의 축구선수 양성 기지인 평양국제축구학교에서도 잘 나가는 수비수다. 183㎝라는 월등한 신장으로 북한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재목이다. 이번이 3번째 해외 대회 방문이라는 그는 “나올 때 마다 자유롭고 재미있다”며 방긋 웃었다.
이날 경기에서 둘은 에이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비수로 출전한 리대권은 공만 잡으면 공격수 김찬우를 찾았다. 그런 리대권을 김찬우도 적극 활용했다.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결정적인 기회를 수 차례 만들었다. 프리킥 기회가 찾아왔을 땐 공을 가운데 놓고 둘이 양 옆으로 섰다. 리대권이 차는 듯 시늉하더니 이내 김찬우의 날카로운 슈팅이 뿜어져 나와 수비 벽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미리 약속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플레이였다. 김찬우는 “대권이랑은 발이 잘 맞는다”며 “여기 선수들은 대부분 영어를 쓰는데 대권이와는 말이 잘 통해 편하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대회 조직위에서 이런 효과를 노리고 두 친구를 한 팀에 배정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알게 된 지 사흘 만에 이미 절친이 돼버린 둘은 벌써부터 헤어질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옆방을 쓰는 덕분에 숙소에 돌아와서도 같이 축구 게임을 하며 우애를 다지던 둘은 16일이 되면 헤어져야 한다. 김찬우는 “각자 나라로 돌아가면 전화를 못 하지 않느냐”며 울상을 지어 보였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김찬우는 “나중에 국가대표가 돼서 아시안게임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리대권은 “우리 월드컵에서 만나자”고 화답했다.
모스크바(러시아)=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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