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일본 도쿄 인근 쇼핑몰 이온. 미국 유명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모여든 시민을 바라보며 카디건을 걸친 사내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한국 가수 성시경이다. ‘내게 오는 길’ ‘넌 감동이었어’ ‘두 사람’ 등 히트곡을 여럿 낸 유명 가수가 쇼핑몰에서 공연이라니. 13일 성시경 측에 따르면 성시경은 3월부터 후쿠오카 등 7개 지역 쇼핑몰을 돌며 노래했다. 노래 ‘거리에서’로 뜬 성시경은 일본에서 거리로 나와 신인처럼 활동한다. 일본 한류를 이끈 보아, 동방신기같이 밑바닥부터 밟고 올라가는 현지 활동 전략이다.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건 쉬운데 신인의 몸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네요, 하하하” 너스레를 떨었지만 성시경은 일본에서 노래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이른 새벽 방송되는 라디오에도 출연한다. 그는 다음달 4일 일본에서 신곡 ‘행복이라면 옆에 있다’를 낸다.
성시경뿐 만이 아니다. 가수 이적도 올 상반기부터 일본 활동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적은 지난 4월 앨범 ‘이적 베스트 셀렉션∼다행이다’를 냈다. 1995년 남성 듀오 패닉으로 데뷔한 뒤 일본에서 발표한 첫 정규 앨범이다. 이적은 지난 2~4일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공연을 열고 현지 관객과 만났다. 발라드 가수의 잇따른 일본 진출이다. 무대에 선지 15년을 훌쩍 넘은 인기 가수들이 일본에서 늦깎이 데뷔하는 점이 특이하다. 아이돌 K팝 그룹처럼 한류 물결도 탈 수 없는 중견 가수의 이례적인 도전이다.
성시경과 이적의 모험은 ‘K팝 아이돌그룹 판’이 된 음악시장의 불균형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록, 재즈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이 음반시장 위주로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음악 소비로 시장의 중심축이 옮겨간 한국과 180도 다르다. 13일 오후 3시 기준 국내 최대 음악 사이트인 멜론 톱20에서 아이돌그룹 노래가 아닌 곡은 ‘여행’(볼빨간사춘기) 등 단 두 개(방송 관련 음원 제외)에 불과했다. 인기 발라드 가수들이 아이돌그룹이 아니면 음원 사이트에서 주목 받기도 어려운 한국 시장을 벗어나 다양성과 시장성을 두루 갖춘 일본으로 눈을 돌려 새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낸 ‘2017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일본 음악 시장은 약 6조원 규모다. 한국(약 9,200 억원) 보다 7배 크다. 정치적 문제가 불거지면 한류콘텐츠금지령(한한령)이 내려지는 중국보다 시장이 안정적인 것도 일본의 장점이다. 아이돌 K팝 외 한국 음악 장르에 관심을 둔 현지 음반사와 팬들도 적지 않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일본은 음반 및 공연 등 오프라인 음악 시장이 건재하고 소극장 공연 문화가 활성화돼 큰 팬덤을 꾸리기 어려운 발라드 가수와 인디 밴드에겐 최적의 해외 시장”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