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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꾸밈노동 STOP!

입력
2018.06.16 09:00
수정
2018.06.29 17:0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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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들이 화장ㆍ다이어트 그만둔 이유

초등생부터 다이어트 압박 받고

알바비 타서 화장품 사고 미용실로

“대체 왜 이렇게 고단해야 하지?”

#2

시간ㆍ돈 넉넉해지고 새 꿈도 생겨

“아무도 내 외모 평가할 자격 없고

나는 내가 편한대로 살 권리 있다”

경험담 공유하며 서로에게 용기 줘

아름다움 강요하는 외모강박 사회에 경종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그 전에 우선 살을 빼거나 미인이(미남이) 되고 생각해야겠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외모강박 사회의 전형적 사고흐름이다. 뭇 여성들이 '탈코르셋 인증'으로 이런 외모강박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그 전에 우선 살을 빼거나 미인이(미남이) 되고 생각해야겠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외모강박 사회의 전형적 사고흐름이다. 뭇 여성들이 '탈코르셋 인증'으로 이런 외모강박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거울을 내려놓자 비로소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죄인이라도 된 양 거울 앞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 대신 잠을 더 자고, 책을 더 읽고, 사람을 더 만났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기 전 대학생 최서영(가명ㆍ23)씨가 한 결심은 하나였다. ‘가혹하고 엄격한 외모 잣대 속에서 더 이상 허우적대지 말자.’

“마른 몸이 곧 아름다운 몸인 사회에서 ‘통통할 때의 저’는 언제나 죄인 같은 존재였어요. 한없이 작게 나오는 옷들에 비해 제 몸은 왜 이렇게 큰지. 지극히 정상 체중일 때도 하루에 바나나 1개만 먹으며 일주일에 4㎏씩 감량을 했죠. 소위 여리여리한 블라우스, 짧은 치마, 원피스에 몸을 맞추려면 그래야 했어요. 허리까지 오는 긴 웨이브 머리를 고수하려고 아침마다 길고 요란하게 머리를 말렸고, 화장 안 한 맨 얼굴은 부끄럽다고 여겼죠.”

식사를 걸러 만든 마른 몸으로 아침마다 ‘예쁨’을 장착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다 보면 일상 그 자체가 버거웠다. 이런 벅찬 질주에 마침표를 찍기로 한 것은 ‘여성스러움’이 부질없는 강박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단해야 하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화장, 옷차림 등 모든 것에 회의를 느꼈어요. 일반적으로 ‘여성스럽다’는 이미지는 ‘불편하다’와 동의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도 내 생김새 그대로 다니는 것을 내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화가 났어요.”

최씨의 결심이 단호했다고 실천까지도 쉬운 건 아니었다. 모두가 화장을 장착한 거리에서 처음 맨 얼굴로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길러왔던 머리를 중간 단발, 짧은 단발을 거쳐 ‘쇼트커트’로 자르는 데도 많은 고민과 망설임, 큰 결심이 필요했다. 활동을 억제했던 원피스, 짧은 치마 등을 세 박스나 내다 버리면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돌아 온 건 더 큰 만족감이었다. 화장품, 미용실, 다이어트 등에 기꺼이, 때론 아낌없이 지불했던 돈을 아끼니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졌다. “불편한 옷을 집어 던지고 나니 활동성이 크게 늘고 활력이 넘쳤어요. 과거 입었던 옷에 대한 환멸까지 느낄 정도로요. 머리도 요란하게 말릴 필요 없이 수건으로 탈탈 털고 나오니, 외출 준비 시간이 확 줄었죠. 이걸로 삶의 질이 얼마나 향상될 수 있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거에요. 몸에 좋은 필수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니 건강에 더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변화는 내면에서도 일어났다. 우선은 진로 계획이 변했다. 늘 염두에 뒀던 ‘뷰티 마케터’의 길이 “결국 다른 여성들에게 ‘코르셋’을 입히고 조이겠다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경영학 전공의 최씨는 다른 꿈을 모색 중이다.

“누구보다 꾸미기를 좋아했고, ‘여성스러웠던’ 제가 외모를 가꾸는데 들였던 시간과 비용을 ‘0’에 가깝게 만드니 삶이 아주 여유로워졌어요.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게 처음에 가장 힘들었지만 점점 짧은 머리, 맨 얼굴의 여성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원래의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 이름 모를 1명, 10명, 100명의 여성이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거죠. 더 많은 여성이 꾸밈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했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최서영(가명)씨가 '여리여리한' 실루엣으로 자신의 몸을 압박하던 옷을 세 박스나 버리면서 얻은 것은 건강, 여유, 자유다. 최서영씨 제공
대학생 최서영(가명)씨가 '여리여리한' 실루엣으로 자신의 몸을 압박하던 옷을 세 박스나 버리면서 얻은 것은 건강, 여유, 자유다. 최서영씨 제공

거울만 보느라 바쁘고 아팠다

마침내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걸까.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브레이크 없는 폭주 말이다. 최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최씨와 닮은 여성들의 경험담이 쏟아진다. 외모에 대한 강박, 특히 세상이 바라는 ‘여성스러움’을 연기하기 위해 감내했던 수고를 덜고, 내 모습 그대로 행복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탈코르셋’ 인증 열풍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몸을 조이는 보정속옷인 코르셋처럼 사회로부터 권장되는 특정한 미적 기준, 나아가 덕목을 거부한다. 1세대 페미니즘에서 탈브라, 탈메이크업 등의 형태로 나타났던 이 운동이 지금 한국 사회 10,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SNS를 타고 재현ㆍ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성형 전후 대신 코르셋을 벗기 전후의 경험담이 담론장을 가득 메운 것은 한국사회에서 꽤 생경한 광경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영어 점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통용되듯이,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면 외모가 훌륭해야 한다는 게 진리로 받아들여 지는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정말 그러한지 혹은 평가의 대상인가 아닌가라는 윤리적 고민 없이 달려온 거죠. 특정 외모의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는 게 마치 훌륭한 삶의 태도인 줄 알고요.”

12년째 대학 강단에 서 온 그는 “외모 문제로 마음의 병을 앓는 멀쩡한 사람이 남녀노소 너무 많다”며 “제아무리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외모관리의 압박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저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블랙피쉬 발행)에서도 남녀불문 “치아가 고르지 않은 자는 치과로, 안경을 낀 사람은 안과로, 여드름이 있는 자는 피부과로, 눈썹이 연하거나 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토털 뷰티케어’를 받으러 가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을 지적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인상, 용모 등을 평가하는 세상의 잣대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피부로 느낀다는 얘기이다. 연애에서도 취업에서도 ‘인정’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니 당연하다.

탈코르셋 운동에 나선 이들은 이렇게 외모에만 천착하는 세상의 잣대에 염증을 토로한다. 대학생 전유나(24)씨는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는 우리처럼 꾸미는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고 남의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를 상당한 실례라고 여겼는데,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머릿속은 온통 다이어트, 화장, 액세서리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게 됐다”며 “생각해보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받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나를 불편하게 하는 화장, 옷, 머리 등은 굳이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 적용한다.

“원래도 화장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탈코르셋 운동을 접하고 외모에 큰 가치 부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아 이거 불편한데’라는 생각이 들면 안 하기로 했어요. 머리를 자르는 것도 예전에는 백 번, 천 번 고민 끝에 했다면 지금은 원하면 바로 잘라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꾸미기에 집착했는지, ‘좀 꾸며라’는 친구들의 핀잔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대학생 이서현씨는 최근 자신이 가진 화장품을 모두 부수거나 버렸다. 립스틱으로 얼굴을 치장하는 대신 스케치북에 '탈코르셋'의 줄임말 '탈코'를 적으며 그는 생각했다. '어디 아프냐, 화장 좀 해, 그게 예의다'라는 말에 더는 매달리지 않겠다고. 이서현씨 제공
대학생 이서현씨는 최근 자신이 가진 화장품을 모두 부수거나 버렸다. 립스틱으로 얼굴을 치장하는 대신 스케치북에 '탈코르셋'의 줄임말 '탈코'를 적으며 그는 생각했다. '어디 아프냐, 화장 좀 해, 그게 예의다'라는 말에 더는 매달리지 않겠다고. 이서현씨 제공

그게 바로 외모강박이었다

외모 가꾸기에 지친 이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단어는 ‘꾸밈노동’이다. 노동에 빗댈 만큼 고단하며 의무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과도한 외모 천착에 대한 자성이 일어나는 게 비단 국내 현상인 것은 아니다. 2013년 TED 강연으로 큰 화제를 모은 러네이 엥겔른 박사의 ‘유행성 외모강박증(An Epidemic of Beauty Sickness)’개념이 대표적이다. 미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그의 저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웅진 지식하우스 발행)는 지난해 국내 번역 출간됐다. 그가 설명하는 외모강박의 증상은 많은 이들이 고백하는 ‘내가 코르셋을 벗기 전’ 모습과 꼭 닮았다.

“지금 모습이 뭔가 만족스럽지 않아 중요한 이벤트에 참석하는 대신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외모강박이다. 다른 여성의 몸과 자신의 몸을 비교하느라 회의에 집중하지 못했다면 그게 바로 외모강박이다. 시간과 돈이 부족한데도 우리 문화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미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면 모두 외모강박 탓이다.”

과거 대학생 남지원(가명ㆍ27)씨의 경우가 그랬다. “20대 초반에는 특히 외모강박이 심해서 아르바이트비를 타서 화장품을 사고 머리를 하는 데 상당 부분을 썼어요. 한 달에 미용실에 몇 번씩 가서 머리를 바꾸기도 하고 30만원까지도 썼네요. 작년에 한 친구한테서 ‘너는 너무 다른 사람 시선에 맞춰 사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죠. 왜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남에게 예뻐 보이려 한 건가 싶은 뒤론 치장을 줄이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에요.”

트위터 아이디 @CreadBrab_Kim씨는 화장을 그만두면서 "내 얼굴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썼다. @CreadBrab_Kim씨 제공
트위터 아이디 @CreadBrab_Kim씨는 화장을 그만두면서 "내 얼굴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썼다. @CreadBrab_Kim씨 제공

10대도, 힐러리도 당한 ‘얼평(얼굴 평가)’

남성이라고 외모 품평이나 외모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학생 이성민(가명ㆍ27)씨는 “여드름이 많아 학창시절에 여보(여드름 보이)라는 놀림도 당하고, 반대로 트러블이 사라지자 얼굴이 허옇다고 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연구ㆍ개발직에 종사하는 정호영(가명ㆍ27)씨는 “군 복무 때 피부가 많이 탔는데 제대 후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이 볼 때마다 지적해대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하도 말을 많이 들으니 6개월간 비비크림을 바르다 여자친구가 ‘본래 피부색이 매력이 있다’고 해줘 그 뒤로 중단했다”고 말했다.

한 40대 남성은 “꽃중년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미디어에서 하루가 멀다고 이런 트렌드를 소개하면서부터는 로션 하나 바르지 않는 내가 잘못되거나 세상에 뒤처지는 듯한 묘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왜 지금 ‘탈 외모강박’을 외치는 이는 모두 여성이며, 이들의 분노한 목소리는 특히 ‘탈코르셋’ 운동으로 비화하고 있을까. 학계의 분석은 외모강박이 남녀불문의 문제인 동시에 ‘압도적으로 여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엥겔른 박사는 “세계적으로는 85~90%의 성형수술과 시술이 여성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며 “여성과 남성은 외모강박에 있어서는 시스템적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서식스대 연구에서 여성과 남성 수십 명에게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게 한 결과, 모든 남성 참가자는 자신의 몸이 지닌 능력에 대해 논하지만, 여성 중에 그러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례도 소개한다. 모든 여성 참가자는 조각조각으로 나눠 자신의 몸의 모양, 즉 외모에 대해 의식하고 논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특별히 허영심을 가진 존재라서가 아니라 남성보다 유독 여성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이 언제든 내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는 인식을 내면화했고, 이 때문에 자신의 신체를 감시하고 모니터링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남성 정치인은 받은 적 없는 노메이크업 상태에 대한 외모 비난을 힐러리 클린턴이 당해야 했던 사례도 언급한다. 엥겔른 박사는 “여성에게 행복의 열쇠가 단 하나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그것’을 갈망하는 여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는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특히 여성의 경우 우선 갖춰야 할 게 날씬하고 예쁜 외모라는 강박이 어마어마하다”며 “외모에 대해 받는 평가가 지나치게 강도 높고 그 시기도 점점 빨라진 투박한 사회에 살게 됐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예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강박을 갖고 화장을 시작하는 나이가 10대로 낮아졌잖아요. 초등학생조차 예쁘지 않으면 조롱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화장 금지’와 같은 규율로 막아지지도 않고 막을 수도 없는 수준에 와 있는 거죠.” ‘그러길래 언제 세상이 너희더러 꾸미랬냐’는 핀잔이 무색하다.

거울 앞을 떠나 세상으로

화장품과 거울을 내려놓겠다는 결심은 ‘나 자신이 외모강박에 어떻게 부역해왔나’라는 자성인 동시에, 사회에서 특히 여성이 갖춰야 할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반문이다. 많은 여성이 그냥 조용히 홀로 자신만의 방에서 화장품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화장품을 버리고 부숴낸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탈코르셋’, ‘탈 외모강박’을 외치고 증언하고 인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머리를 쇼트커트로 바꾸고 화장을 그만두기로 한 대학생 이서현(21)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인들에게 자신의 이런 의지를 선포했다. “머리를 자르겠다는 계획 하나만 밝혔는데도 주변에서 ‘지금 예쁜데 왜 그러느냐’며 만류하는 분위기가 상당수였어요. 화장하지 않은 날에는 ‘어디 아프냐’, ‘화장 좀 해라’는 말을 꼭 들었고요. 이제는 이런 틀에 갇히지 않고 한 단계씩 속박을 벗어던질 생각이에요.”

최근 탈코르셋 인증을 한 트위터 아이디 @Creadbread_kim씨는 “립스틱을 일주일간 바르지 않고, 화장품을 한 달간 전혀 사지 않고, 머리카락도 단계별로 짧게 잘라내기 시작하면서 외모에 대해 신경 쓸 시간에 ‘외모가 아닌 나’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고 있다”며 “심지어 화장품을 사는데 들였던 비용을 아껴 저축통장을 하나 만들었다”고 했다. “아무도 날 평가할 자격이 없고, 나는 내가 편한 대로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개인을 편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알려주니까요.”

최근 '쇼트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이서현씨는 더 이상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예쁘다"는 통념에 천착하지 않는다. 이서현씨 제공
최근 '쇼트커트'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이서현씨는 더 이상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예쁘다"는 통념에 천착하지 않는다. 이서현씨 제공

이처럼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인증, 선포, 증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계간 홀로’의 발행인 이진송씨는 “개인 차원의 실천과 저항적 의미의 퍼포먼스도 용기 있고, 유의미하고, 좋은 일이지만 이런 움직임을 계기로 외모강박을 부추기는 미디어나 윤리의식 없는 산업의 진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쏟아져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을 코르셋이라는 은유보다는 규범, 억압으로 표현하고 싶다”며 “정말 코르셋처럼 한 개인의 의지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공기나 중력처럼 피하기 힘든 것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저서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프런티어 발행)에서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강박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여리여리한, 여자여자한, 우아한, 아담한, 자연미인이자, 잘 먹으면서도 날씬하고, 화장을 잘 갖춰 하고, 긴 생머리를 지닌 존재”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그에게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과거에도 탈메이크업 운동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우리가 결국 끊임없는 외모강박에 시달리고, 10대까지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외출을 망설이고, 누구나 아이돌 가수같이 관리된 상태를 지향하고, 아름다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광고하는 이 지경에 놓이고 말았잖아요. 개별적 말하기를 통해 공유하는 이 경험들이 더 다양한 고민과 노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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