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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이 부분은 좀 더 보완되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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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이 부분은 좀 더 보완되어야 해요!”

입력
2018.06.13 19: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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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니체’(아르테, 2018)에 나오는 한 대목은 ‘대중적 글쓰기’라는 강박이 만들어 낸 잘못된 글쓰기의 본보기다. 지은이는 니체와 바그너의 아내였던 코지마와의 돈독한 관계를 길게 기술하고 난 다음, 니체가 코지마를 흠모했다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대목이다.

“이렇게 그들 사이에 묘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니체는 코지마에게 성적으로 끌린 것일까? 코지마와의 에로티시즘은 자신의 사상적 우상인 바그너를 배반하는 것이다. 만약 니체가 코지마를 한 여자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바그너에게 느끼는 모든 흠모의 감정을 어쩌면 코지마에게 덧씌운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코지마는 니체와 바그너 사이의 동성애적 관계를 은폐하는 가면에 불과하다.”

지은이는 방금 인용한 대목에서 니체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 내지 암시를 하고 있는데, 이런 암시를 ‘팩트’로 받아들일 독자도 분명히 있다. 이런 억측을 꾸며내는 것은 니체전집 편집위원과 한국 니체학회 회장을 역임한 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원래 이런 물의(sensation)는 나 같은 잡문가가 만들고 니체 전문가가 사실을 따져보는 것이 정상인데, 니체 전문가가 저런 낭설을 퍼트리고 문외한이 그것을 바로 잡겠다고 나서는 이 상황은 참으로 신묘하다. 지은이가 꺼낸 화제는 아예 한 권의 책이 되어야 했거나, 적어도 이 저작 속에서 좀 더 부연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저 문단만 투척해놓고 빌라도처럼 손을 씻었다.

한 명의 여자와 두 남자가 이루는 끈끈한 삼각관계는 종종 은폐된 남성 동성애로 해석되고는 한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거나 양도하는 경우, 잠재적 동성애 기질을 가진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매개로 간접적인 육체 교섭을 한 것으로 간주된다. 오에 겐자부로는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고려원,1996)이라는 소설에서 남자들의 이와 같은 이상심리를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표현할 수 없는 자가 친구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벌이는 예식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영화 ‘친구’에서 준석(유오성)이 진숙(김보경)을 상택(서태화)에게 안겨준 일화 또한 진숙을 매개로 두 사람이 동성애적 감정을 나눈 것일까. 궁금하신 독자는 루이-조르주 탱의 ‘사랑의 역사 -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문학과지성사,2010)을 보시면 된다.

다시 문제의 한 대목으로 돌아가자. 더는 그럴 듯한 증거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은이가 ‘바그너-코지마-니체’의 삼각관계로부터 니체의 동성애를 간파한 근거를 알 수 없다. 만약 지은이의 주장이 위에서 기술한 상투적 도식, 즉 두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진 삼인조는 남성 동성애 욕망의 우회적 모형이라는 도식에 근거했다면 금세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바그너-코지마-니체’에 대한 단락이 끝난 뒤에, 곧바로 ‘파울 레-살로메-니체’라는 또 다른 삼각관계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상투적 도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면, 여기에서도 똑같은 가정이 되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는 니체가 파울 레를 사랑했다는 설명을 꾀하고 있지 않으니, 니체가 바그너를 연모했다는 지은이의 근거는 더더욱 무색해진다.

한국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의 수준은 높다. ‘선생님, 이 부분은 좀 더 보완되어야 해요!’라고 지적할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편집자들이 교정을 보거나 오문을 바로 잡는 임무에 만족하고 마는 이유는, 저자들이 편집자를 이인삼각 경기를 하는 짝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편집자를 공동 저자로 깍듯이 대우하면 훨씬 완성도 높은 저서를 가질 수 있다. 외국 책의 서문에 저자들이 공들여 편집자에게 예를 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지은이가 감수를 보고 서문을 쓰기도 했던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니체의 인간학’(다산북스,2016)을 입수했다. 니체는 여성과 지내는 것보다는 남성들과 지내는 것이 더 편한 높은 동성사회성을 지녔을 뿐, 동성애를 실천하지는 않았다. “니체의 행동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건대 그는 소위 말하는 동성애자는 아닌 듯하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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