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은 그 결과의 중요성만큼이나 ‘의전’에도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국력, 나이 등 양국의 현격한 차이에도 두 정상이 대등한 관계로 보이도록 신경 쓴 모습이었다.
우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에 먼저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배려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현지 시간으로 오전 8시쯤 숙소인 시내 샹그릴라 호텔을 떠나 회담장인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로 향했다. 이어 10분 정도 지난 오전 8시 12분쯤 김 위원장이 숙소인 세인트리지스 호텔에서 전용 차량을 타고 카펠라 호텔로 떠났다. 양 정상의 숙소는 57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회담장 입구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회담장 입구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김 위원장의 전용차량이었다.
반면 양 정상이 이날 오전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상석’을 양보했다.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 회담에서 두 사람이 앉거나 걸을 때 그들의 정면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왼쪽이 상석이다.
보통은 회담을 개최하는 국가 측 인사가 오른쪽에 앉고 손님을 왼쪽, 즉 상석에 앉게 하는 것이 외교 관례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인 카펠라 호텔 복도를 이동할 때와 단독 회담을 할 때 김 위원장에게 왼쪽 자리를 내 주고 자신은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또 회담장에 들어설 때나 사진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팔을 가볍게 터치하며 손님을 안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처음 악수했을 때 한 쪽이 먼저 와서 상대를 기다리는 식으로 하지 않고 서로 상대에게 다가가서 악수하도록 조율한 것도 ‘대등한 관계’로 보이게 하려는 배려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은 정상회담 보름 전인 지난달 28일, 정상의 의전을 책임지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 비서실장을 싱가포르로 파견해 치밀한 조율을 진행했다. 김 부장과 헤이긴 부실장은 각자 자국에서 복수의 정상을 보좌하며 의전 업무를 다년간 해온 베테랑들이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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