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전야 싱가포르 ‘시티 투어’를 밀착 수행한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은 북한 외교라인 경제통으로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외자 유치를 담당해 왔다. 1990년대 말 주(駐)스위스 대사 시절 유학 온 김 위원장을 돌본 인연이 있는 만큼 향후 북한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대북 투자 유치와 관련해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공산이 크다.
리 부위원장은 11일 밤 ‘깜짝’ 나들이에 나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등 싱가포르 랜드 마크들을 둘러 본 김 위원장을,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더불어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다녔다. 두 남매와 리 위원장의 친분은 각별하다. 1997년 무렵부터 3년여 동안 김 위원장은 김 제1부부장과 함께 스위스 베른 인근 쾨니츠 소재 공립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당시 내내 이들을 지근거리에서 뒷바라지한 인물이 리 부위원장이다.
때문인지 2013년 말 처형된 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당시 당 행정부장의 측근이었는데도 2014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회의에서 외무상에 임명된 데 이어 2년 뒤인 2016년 5월 제7차 당 대회에서는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리 부위원장은 30년간 유럽공관에 근무하면서 김씨 일가의 금고지기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리철’이라는 가명으로 1988~2010년 베른 대사와 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지내며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비밀계좌를 특별 관리했고, 대북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스위스 투자청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는 김 위원장 권력 승계를 돕기 위해 2010년 평양으로 돌아온 뒤 장성택의 외자 유치 사업을 거들어 황금평ㆍ위화도 북중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외무상 임명 당시 핵무기 개발에 따른 대북 제재를 피하고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는 임무를 그가 주로 수행하게 되리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싱가포르 ‘야간 시찰’에 관광 산업 등 싱가포르 경제 모델 벤치마킹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북한의 투자 기반 경제 개발을 주도할 리 위원장의 동행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개혁ㆍ개방 경험 학습은 최근 방중 참관단을 이끌었던 박태성 당 부위원장한테, 서방을 상대로 한 투자 유치는 과거 자기 후견인인 데다 국제 감각과 외교 경험이 풍부한 리 위원장한테 각각 맡기는 게 김 위원장 구상일 수 있다는 추측도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나온다.
싱가포르=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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