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시민들 기대감 속
수백명 촬영하러 몰리기도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전 11시 30분. 싱가포르 총리 집무실이 있는 대통령궁 이스타나 앞에는 100여명 시민과 관광객들이 운집해 있었다. 저마다 무엇을 찍을 요량으로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있는 모습이 누군가를 단단히 기다리는 분위기다. 한 달에 한번, 경비교대식(COG)이 있는 첫째 일요일 오후에나 볼법한 풍경이지만 이날은 월요일인데도 비슷한 장면이 재연됐다.
이튿날 마지막 냉전 현장인 한반도에 평화의 단초를 마련할지도 모를 북미 정상간 담판이 자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의무감과 자부심을 자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셴룽 총리와 오찬 회담을 갖기 위해 곧 이스타나로 입장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던 길을 멈췄다는 누룰(51ㆍ여)씨는 “세계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르는 주인공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며 “세계 평화를 위해 싱가포르가 기여하고 있다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회담의 성공적 개최와 함께 한반도 평화 정착을 바란다는 대답이 다른 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돌아왔다.
경찰이 설치한 철제 펜스가 생소했지만 그 뒤에서 질서를 지키며 트럼프 대통령이 탄 ‘야수’(전용 방탄차)를 차분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시민들은 질서정연했다. 한 시민은 “역사적인 회담 개최가 자랑스럽지만, 언론 요란을 떠는 만큼 큰 변화가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날부터 시내 일대가 ‘특별행사구역’으로 지정돼 삼엄한 통제와 검문이 이어졌지만 도로에서 큰 정체를 볼 순 없었다. 한 택시 기사도 목적지로 가는 길이 막혀 유턴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웃으면서 핸들을 돌렸다. 그는 “한국에서 온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더 많이 쓸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역사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싱가포르 남쪽 센토사 섬도 정상회담이 열리는 카펠라 호텔 주변 일부를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 없었다. 카지노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놀이공원도, 본섬에서 센토사로 들어가는 모노레일도 정상 운영됐다.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통제되지 않았다. 섬 서쪽 끝에 있는 실로소 요새에선 전날 오후 대포 포구 60문에 일일이 꽃다발을 꽂는 행사가 열렸다. 포 주변엔 평화를 장식하는 올리브 장식도 놓였다. 센토사개발공사(SDC) 관계자는 “'평화와 고요'란 의미의 센토사란 이름처럼 이 섬이 평화를 가져오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874년 건립돼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해안포대로 쓰였던 이 요새는 1974년 군사박물관으로 전환돼 관광지로 각광을 받아 왔다. 실로소 요새의 꽃다발과 장식은 회담 이후인 13일까지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싱가포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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