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두’는 제가 살고 싶어서 했던 작품이었어요.”
올해로 데뷔 10년차를 맞이한 유이는 최근 종영한 MBC ‘데릴남편 오작두’를 ‘희망을 얻은 시간’이라 표현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약 두 달 간 쉴 틈 없이 유이를 달려오게 했던 이번 작품은 그 어떤 때 보다 특별한 의미였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의 저는 사실 극 중 승주처럼 실제 저 역시 밝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마냥 제가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 아파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었지, 밝게 사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굉장한 허무감이 찾아왔었어요. 저는 스스로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개인적인 일이 저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제 스스로가 무너졌거든요. 그 당시에는 제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고, 주변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던 수준이었거든요. 그러다 ‘오작두’가 우연한 기회에 저에게 찾아왔고, 제 스스로 승주라는 친구에게 힐링을 받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 편으론 극 중 승주가 저와 사실 비슷한 상황인데 제가 이 캐릭터를 맡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승주는 공황장애가 있는 친구고, 저는 그 정도는 아니였지만 ‘내가 밝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혼란이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첫 미팅 당시에 작가님, 감독님 앞에서 울면서 ‘제가 이런 상황인데 이 역할을 해도 되냐’고 물었어요. 한 마디로 제가 살고 싶어서 선택했던 작품이었죠.”
유이를 몰아 붙였던 힘들었던 일련의 시간 이후 운명처럼 찾아온 ‘오작두’는 유이의 바람처럼 그녀에게 힐링과 희망의 시간을 선물했다.
“작품을 선택하고 본격적인 촬영이 들어가고 나서는 정말 할 말 다했어요.(웃음) 극 중 승주처럼 말도 거침없이 하고, 액션 팀이 있는데도 제가 직접 맞으면서 액션신도 소화했고. 한 번은 제가 ‘아 씨’ 이런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음향감독님이 저를 말리기도 하셨죠. 방송 안 된다고.(웃음) 그런 시간을 거치다 보니 저도 굉장히 밝아졌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밝아진 것을 넘어서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 겉으로만 밝아지면 안되겠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은 작품이었죠. 승주의 자신감이 저에게도 전해져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다 하고, 예쁨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작품이라 준비를 크게 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던 작품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희망을 얻고 마칠 수 있었죠.”
작품의 따뜻함 뿐만 아니라 함께 출연했던 선배 배우들 역시 극심했던 유이의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인연들이었다. 작품을 마치고 다시 본연의 밝은 미소와 성격을 되찾은 유이는 힘들었던 당시의 자신을 “바보 같았다”고 회상하며 선배 배우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제가 원래 울렁증이라는 게 없던 사람인데, 이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청심환을 굉장히 많이 먹으면서 촬영을 했었어요. ‘한끼줍쇼’에 출연했을 때도 굉장히 많이 떨려 했었죠. 저는 화면 앞에 나서야 하는 사람인데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게 굉장히 무서워진 거죠. 무슨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압박도 없는데 괜히 혼자 ‘실수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압박도 컸고요. 그런데 그건 그냥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저에게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반성을 많이 했어요. 강우 오빠, 상훈 오빠, 극 중 저희 엄마로 나왔던 정수 엄마까지 모든 분들이 제가 연기를 잘해서 ‘잘했다’ 해주시는 게 아니라 ‘고생했다’고 이야기 해주시니까 저 또한 기분 좋게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이는 극 중 자신과 ‘양갱커플’로 청정 로맨스를 선보였던 파트너 김강우에 대한 감사함과 애정 역시 거침없이 전했다.
“처음 캐스팅 됐을 당시 강우 오빠가 낯을 굉장히 많이 가리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님과 감독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 저 역시 처음엔 솔직히 선배님이 워낙 수트가 잘 어울리시고, 무게 있는 느낌의 역할을 주로 하셨다 보니 작두라는 캐릭터와 매치가 안된다고 생각했었어요.(웃음) 그런데 강우 오빠가 첫 촬영을 위해 촬영장에 등장했는데 더벅 머리를 하고 오셨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 비주얼로 갑자기 사투리를 쓰시는데 리딩 때랑 또 다른 다정다감한 사투리를 유창하게 쓰시는 거죠. 그냥 작두 같았어요. 그렇게 첫 촬영을 시작하고 두 사람 다 대사를 잘 못 외우는 편이라 내기도 하면서 점점 친해졌죠. 어느 날 오빠가 저한테 본인이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 사람들을 낯설어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이렇게 거리를 두는 듯 농담을 받아 쳐주는 후배가 없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기도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셨죠. 선배 역시 제가 연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걱정을 많이 하셨대요. 그런데 그냥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나중엔 같이 연기 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앞서 저와 함께 작품을 했던 이서진 오빠, 이요원 언니도 같은 패턴이었는데, 그런 걸 보면 저는 아직 선배님들과 함께 하는 게 편한 것 같아요.(웃음)”
여러모로 유이에게 큰 의미로 남은 ‘데릴남편 오작두’는 작품에 대한 호평과 선전했던 시청률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던 전작 ‘불야성’과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의 아픔을 말끔하게 씻어 내렸다. 유이는 이 같은 성적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저희 드라마 자체가 재미없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오작두라는 캐릭터가 신선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오작두 같은 남자를 원하실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시청하시면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이번 작품을 비롯해서 모든 작품을 할 때 ‘대박 날 거 같다’ 했던 작품이 없었어요. 다 제가 하고 싶어서 했던 거였죠. 저는 ‘맨홀’ 때도 시청률이 낮은 줄 알았지만 3사 통틀어서 최저일 줄 몰랐어요.(웃음) 팬 분들이 촬영장에 와 주시고 커피차가 와주시고 하니까 시청률이 낮은 줄은 알았지만 최저 기록인줄은 몰랐어요.그래서 반성도 했었고, 이번 드라마 들어가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쫑파티 때 감독님께서 소고기를 사주셔서 ‘잘 됐구나’ 싶었죠.(웃음) 앞으로 시청률에 대한 꿈이 있다면 작품이 잘 돼서 포상 휴가를 가봤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배우들끼리라도 휴가를 내서 여행도 가고, 공항 패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게 저의 작은 꿈이에요.”
스타한국과 마지막 종영 인터뷰를 마친 유이는 “이제야 진짜 작두와 이별할 시간이 온 것 같다”며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시즌2’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덧붙였다.
“마냥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요. 저는 평소에 출연한 작품들의 대본을 다 모으는데, 최근 첫 독립을 하고 처음으로 모은 대본이 ‘오작두’였어요. 후반에 갈 수록 대본이 촉박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23, 24회는 완고가 늦게 나온 편이었는데, 그 대본을 받는 순간에도 ‘우리가 진짜 끝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촉박한 촬영 현장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었죠. 저희끼리는 시즌2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로 아쉬움이 컸어요. 마지막 회에서 7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저와 작두 사이에 아이 하나 못 낳았잖아요. 그래서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아이 하나 정도는 낳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죠.(웃음)”
그간 늘 계획을 세워두고 그를 쫓아가는 삶을 살아왔다는 유이는 올해만큼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을 쏟을 예정이다. 차기작에 대한 불안함이나 조급함 역시 지금의 유이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동안 저에게 많은 작품들이 다소 촉박하게 찾아왔었어요. 그런데 사실 기회는 언제 올 지 모르는 거잖아요. 또 제가 어떤 작품을 만날진 모르겠지만, 제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또 하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금방 찾아올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제 마음가짐이 준비가 됐을 때 좋은 작품이 온다면 하고 싶어요. 그게 올해의 목표에요. 또 그 동안은 뚜렷한 계획과 목표를 잡고 살아오면서 제가 아프던, 뭔가를 원하던 늘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살았었는데, 이제는 저를 아끼고 사랑해야 주변 사람들에게도 밝은 에너지를 드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를 좀 아끼고 건강하게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일도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던진 말은 변명이 아니라 지킬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보려고 해요.”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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