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체류 둘째 날인 11일 ‘깜짝’ 심야 시티투어에 나섰다. 이날 하루 종일 숙소에 머물렀지만 밤이 되자 공개 행보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음날 열릴 북미 정상회담 전략 구상과 전반적인 상황 점검에 몰두하다 북한 실무진의 대미 사전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움직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날 대통령궁인 이스타나에서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면담한 뒤 오후 7시쯤(현지시간)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로 돌아온 김 위원장은 24시간이 지나도록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리 총리의 오찬 회담 소식을 전하면서도 김 위원장의 일정과 동향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자국의 운명을 좌우할 역사적 결단을 앞두고 최종 전략을 구상하는 데 주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날 오전 10시부터 싱가포르 리츠 칼튼 호텔에서 만나 벌인 의제 관련 막판 협상 내용도 세세하게 보고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대가 초강대국이면서 그간 적대시해온 미국인 만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견주어 대등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김 위원장이 회담 전까지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후 9시쯤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호텔 로비에 웃는 표정으로 등장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벤츠 방탄 차량이 밖으로 빠져 나왔다. 현지 매체인 스트레이트 타임스는 김 위원장이 ‘짧은 시티투어’를 할 계획이라면서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 스카이파크와 복합 문화공간인 에스플러네이드 등을 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투어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리수용 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 등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12시간 남긴 시점에서 돌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것은 회담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진 북미 실무 협상 결과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싱가포르를 경제 발전 모델로 염두에 두고 있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투어를 감행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싱가포르 스위소텔 더 스탬포드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을 주제로 한 기조발제를 통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권력을 아들 리셴룽이 이어받는 권력 구조 하에서 상당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싱가포르를 (김 위원장이 향후 북한 발전 모델로서)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앞서 3월 말 첫 방중 때에도 중국 최고 자연과학 연구기관이라 불리는 중국과학원을 참관했던 만큼 싱가포르에서도 경제 관련 시설을 찾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싱가포르에서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한편 북한 수행단은 이른 시각부터 호텔을 드나들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리용호 외무상은 이날 발라크리슈난 외무장관과 만남을 가졌고, 의전ㆍ경호 총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도 마지막 점검을 위해 호텔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싱가포르=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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