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 작가 정태용 ‘작업사진’
SNS에 올리자 “범죄” 비난 잇따라
서울시 등 경찰 수사 의뢰 방침
독일 베를린시가 2005년 한반도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을 담아 서울시에 기증한 실제 베를린 장벽이 한 그라피티 아티스트에 의해 훼손돼 파문이 일고 있다. 예술 행위라는 주장이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념물을 훼손한, 분별력을 잃은 범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28)씨는 지난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서울 중구 청계2가 한화빌딩 앞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 정씨는 이 게시물에 ‘전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며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의미를 담았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201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아트살롱페어에 전시회를 여는 등 거리문화 예술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로 알려졌다.
정씨가 그림을 그린 장벽은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에 달하는 1961년 동독에서 설치했던 장벽 중 일부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거된 뒤 베를린시 마르찬 휴양 공원에 전시되다가 2005년 한국에 기증됐다. 당시 베를린시는 공원 가로등과 벤치, 바닥 포장까지 한꺼번에 서울시로 보냈으며 서울시는 100㎡ 부지를 마련해 ‘베를린광장’이라 명명하고 장벽을 시민들에게 전시해왔다.
정씨 글이 올라온 직후 개인의 무모한 예술 욕심에 훼손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정씨 그라피티로 장벽의 서독 쪽 벽면은 파랑 노랑 분홍 은색 페인트로 뒤덮이면서 분단 당시에 독일인이 남긴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과 그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으며 깨끗한 상태로 남겨져 있던 동독 쪽 벽면 역시 정씨가 남긴 여러 글귀로 훼손이 된 상태다. 정씨는 비판 여론이 거세자 곧바로 SNS를 탈퇴했다.
서울시와 장벽을 관리하고 있는 중구청은 경위를 파악한 뒤 경찰에 수사의뢰할 방침이다. 정씨에게는 형법상 재물손괴죄 또는 공용물손괴죄가 적용될 수 있는데, 공용물손괴죄의 경우 1,000만원 이하 벌금 혹은 7년 이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다. 지난해 지하철 차고지에 잠입해 전동차에 그라피티를 그린 영국인 형제에게 1·2심 법원이 각각 4개월 실형을 선고한 전례도 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