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동 기회] ‘한국인의 불안하다’
②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 불안이 만연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두고 불신, 불만, 불안이라는 ‘3불 사회’로 지칭한지 오래 되었다. 최근에 원로 사회학자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주도한 ‘한국형 사회갈등 보고서’에는 “한국 사회가 불안을 넘어선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오늘의 한국 사회에 불안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난에 찬 현대사와 한국인 특유의 심성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공포가 가시적이고 특정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인 반면, 불안은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막연하고 만연한 두려움이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평온한 일상생활을 즐기던 도중 갑작스럽게 원인이 없는 심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범불안장애 환자들은 사건ㆍ사고가 없는 평범한 일상의 한 가운데에서 일상사의 대부분에 대해 뭔가 잘못될까 걱정을 한다. 이들 불안장애 환자들의 심리 기저에는 안정감의 원천이던 대상과의 분리가 자리하고 있거나 외부 세계를 과대 평가하는 반면 자기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불안의 심리 메커니즘이 이러할진대, 6ㆍ25 전란(戰亂), IMF 환란(換亂), MERS 환란(患亂) 등과 같은 재난이 반복되면서 국가는 국민 안전과 안정감의 원천이기는커녕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 속에 불안 심리가 만연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일 것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도 불안의 주범으로 꼽힌다. 성공의 역사가 불안의 주범이라 하는데 대해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와 무한경쟁이 이뤄지면서 자칫 나 혼자만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경쟁에서 낙오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 또한 사실이다.
주체성과 강한 공동체 의식이라는 얼핏 상호 모순되는 한국인 특유의 심성은 ‘경쟁으로 유발된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한국인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강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성취 욕구의 좌절에 취약하다.
게다가 나와 내가 분리되지 않은 ‘우리’라는 강한 공동체 의식도 갖고 있어 서로간의 격차가 정도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고도 성장기에는 저마다의 성공을 거둔 개인들이 다수 존재했지만, IMF 환란에 이은 경제성장의 둔화, 사회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경쟁과 격차를 심화시켜 한국인들의 불안 또한 급상승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현상을 타개할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국가ㆍ사회적으로는 사회학자 김문조 교수의 지적대로 각종 부조화로 사회적 가성비가 떨어진 한국사회를 재조화(Rematching)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정자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원하는 국민의 마음을 읽고 이러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국민 각자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지나친 외적 성공의 추구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됨을 갈파한 바 있다. 인간은 사회생활 속에서 타인과 사회의 기대를 반영한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를 발달시키는데 페르조나와 자아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면 자아와 내적인 정신세계로부터 단절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게 되어 정신적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더 높이’를 외치려 외면적 성장만을 추구했고 우리 마음을 소홀히 해 왔다. 이제 우리 마음을 돌아보고 돌보기 위한 ‘더 깊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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