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비아그라(Viagraㆍ화이자의 발기부전치료제)야. 2018년은 내게 특별한 해야.
1999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스무 살이 됐네(미국에서는 1998년 탄생).
채수홍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내가 옛날 조미료를 의미했던 ‘미원’처럼 발기부전치료제를 대표하는 보통명사가 됐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이후 현재 국내에만 293종(복제약 포함)의 발기부전치료제가 팔리고 있어. 채 교수는 페니실린이나 피임약이 그랬던 것처럼 의약계의 혁명으로 꼽혔던 내가 이제 더 이상 관심을 끄는 뉴스가 되지 못할 만큼 일상 속에 뿌리를 내렸다라는 평가를 했어. 알다시피 처음 나는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가 임상시험 중 뜻밖의 부작용으로 발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로는 지금의 발기부전치료제로 방향을 틀었으니 더 극적이지.
지난 20년 동안 한국사회에 내가 끼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지. 내가 큰 반향을 가져온 것은 성적 욕망이 생리적인 것 못지않게 사회문화적이기 때문이라는 거야.
성 담론, 비밀의 방을 나왔다
그 중 성(性)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금기시했던 성 담론의 닫힌 문을 열게 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어.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연구소 대표의 평가를 들어볼게.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사회를 성에 대해 좀 더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고 꺼렸던 성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내가 등장하기 전인 1993년 1년 동안 주요 일간지에서 ‘발기부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경우는 10여 회에 불과했는데, 1999년엔 330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고 하네. 한국 사회가 성 이슈를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된 데에 내 공이 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성능력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ㆍ정신적 힘과 직결되는 운명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내가 나타나면서 약을 통해 치료되고 유지될 수 있는 육체적 반응으로 여겨지도록 하는데 나름 역할을 했지. 2004년 의사 1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8.2%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발기부전 환자를 처방이나 수술 없이 돌려보냈지만, 이후에는 이를 치료할 병으로 인식했다고 하네. 이들 의사 10명 중 9명은 ‘발기부전은 치료 가능하다’고 답했어.
나를 통해 살아갈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땐 뿌듯해지곤 해. 박민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한 달에 두 번씩 나를 만나러 오는 70대 환자를 소개해줬어. “성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비아그라 덕분에 발기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남성으로 살아 있구나’라는 존재감이 생긴다는 겁니다. 일상에서 안정감도 찾게 됐고요. 몸이 노화하면서 발기는 자연스럽게 줄게 되는데 비아그라가 이를 극복하도록 도움을 준거죠.” 발기부전 환자는 가정, 사회, 파트너를 대하면서 남성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자아를 확인할 수단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는 거지. 채 교수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어.
뜻하지 않게 갈등의 씨앗 되기도
내가 사회에 남긴 부정적 영향도 크다고 해. 황진철 분당그랜드비뇨기과 원장은 진짜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비아그라 한 알로 넘어가려는 환자들이 늘었다는 점을 우려했어. “암 환자가 근본 치료를 안 하는 대신 당장 진통제로 고통을 이겨내려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때로는 발기부전이 나중에 뇌,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는 등 정말 큰 질환의 경고등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를 간과할 우려도 있습니다. 호르몬 검사하고, 심전도 찍고 해서 발기부전이 몸에 이상이 있어선지,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 때문인지 따져보고 비아그라를 처방해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비아그라 주세요’라는 환자 말 듣고 처방전을 주는 의사들도 많고요.”
굳이 발기부전치료제가 필요없는, 특히 2030세대조차 나에게 너무 의존하려 한다는 것도 걱정거리야. 황 원장은 30대 초반의 게임 개발자 얘기를 들려줬어. “성욕 자체가 없고, 생긴다 해도 발기가 되지 않으니 비아그라를 처방해 달라는 겁니다. 생활 패턴을 물었더니 게임 개발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잔다고 했어요. 비아그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고 치료를 받자고 제안을 했죠. 그런데 얼마 뒤 그 환자가 업무 중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2주 동안 입원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 8시간 이상 푹 잤더니 (발기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배정원 소장은 나를 정력제, 최음제라 여기는 시각도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했어. “비아그라는 피가 잘 돌게 하는 역할인데도 파트너에게 더 강해 보이려고 무작정 챙기고 보자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술 덜 마시고 담배 덜 피우는 게 더 도움이 되는데도, 성관계를 과시라고만 여기면서 비아그라를 오남용하는 문제도 있죠.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섹스를 하도록 요구받는 시대가 된 측면도 있다고 봐요.” 한국소비자원이 전국의 60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했다는 100명 중 혈압상승(20명), 안면홍조(19명), 안구충혈(10명) 등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77%나 됐다고 해.
때로는 내가 노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는군. 박민구 교수는 60대 환자 얘기를 들려줬어. “비아그라를 처방받은 환자(남편)가 오랜만에 아내와 성관계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는데 얼마 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오신 겁니다. 아내가 부담스러워 한다는 거예요. 여성은 폐경기 이후 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고 성욕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빨리 관계 맺자고 재촉했다가 부부 모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거죠.”
배 소장은 나를 떠올릴 때면 여성에 대한 배려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어. 내가 한국에서 태어날 무렵 한국 화이자 요청으로 전국 비뇨기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그때부터 이점을 강조했다고 하네. “여성이 준비 되지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하면 다치거나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에게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아내나 파트너와 함께 상담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사랑하는 상대와 친밀감을 주고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성적 감흥이 있어야 (비아그라도)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빠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수홍 교수는 내가 남성 중심의 성인식을 강화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어. “여성은 비아그라의 생리적 효과를 남성보다 훨씬 덜 감동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여성은 비아그라가 발기기능을 회복시켜 성생활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는 점보다 남성의 자존심이 회복되면서 다시 찾아온 가족의 평화에 고마워합니다. 발기부전 환자가 비아그라를 구세주로까지 칭송하는 반면 성 파트너 여성은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성생활과 삶의 도우미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비아그라를 페니스 파시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등장이 중장년 남성을 외도, 불륜의 장으로 안내하고, 음침한 성산업을 활성화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
이름 잘 짓기의 끝판왕
광고업계에서는 나의 성공을 지켜보며 제품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보여 준 사례라고 했어. 내 이름은 ‘활력(Vigor)’과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를 합해 만들었어. 나를 먹으면 활력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콸콸 쏟아진다는 뜻이지. 일부에서는 타갈로그어 ‘고환(viag)’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도 있어. 의료ㆍ문화ㆍ사회 분야뿐 아니라 광고업계에도 나의 20년 일생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야.
브랜드네이밍 전문가 박용석 아이코닉브랜드 대표의 얘기를 들어볼게. “비아그라는 대단한 이름입니다. 발음도 쉽고 이국적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건강한 남성성을 느끼게 하는 절묘한 조합이죠. 이후 ‘그라(gra)’는 힘을 상징하는 접미어가 됐죠. 장어그라, 참치그라, 누에그라 등 각종 식당ㆍ제품 명칭에 그라를 붙인 사례가 이어졌죠.”
같은 발기부전치료제이지만 이름 때문에 망한 경우도 있다고 해. “원조라 할 수 있는 비아그라와 비교해 차별성과 적합성을 적절히 배합해야 하는데 바이엘의 레비트라(Levitra)는 차별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무슨 뜻인지, 발기부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담지 못했죠. 결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신세가 됐어요.”
반면 현재 국내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미약품의 ‘팔팔’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것 같지만 나처럼 이름 덕을 톡톡히 봤대. 힘을 주는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발기부전을) 누군가에게 대놓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심리를 파악해 의사들한테 처방을 요청할 때도 쉽게 얘기하게 돕는다는 거야.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는 쑥스러워 비타민 V 혹은 비타민 B라고 하는 반면, 팔팔은 예전 ‘88 담배’ 찾던 시절처럼 ‘팔팔 주세요’ 한다는 거야.
광고도 그래. 한국에서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에 대한 TV광고는 금지하고 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내 광고는 각 나라의 성에 대한 정서, 문화적 배경을 골고루 담은 아이디어가 번득이고 늘 화제를 모으고 있지.
밀렵 피해 동물 보호에도 한 몫
내가 태어나서 비단 사람들만 좋아진 것은 아니야.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인간에 의해 무참히 밀렵당하던 동물들도 과거와 비교해 훨씬 덜 잡혔다고 해. 2001년 국제 환경단체 ‘인바이런멘털 컨저베이션’은 내가 태어난 이후 2년 동안 바다표범이나 순록 등의 거래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논문으로 펴냈는데, 주요 산지인 캐나다에서 하프바다표범 포획량이 최대 허용치인 25만 마리에서 10만 마리 이하로 줄었고, 허용치가 1만 마리인 두건바다표범은 딱 10마리만 잡혔대.
바다표범 수컷은 짝짓기 철 수십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일명 하렘(일부다처 집단)을 만드는 습성이 있다는 이유로 정력제로 인기가 높았고 코뿔소, 순록 등 대형 초식동물도 뿔이 정력에 좋다며 마구 잡아들이는 바람에 개체 수 감소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지.
그런데 내가 태어난 1998년 이전에 70~100달러에 팔리던 바다표범 성기가 2000년에는 25달러로 가격이 내렸고, 순록 가죽도 1998년 전후로 72%까지 떨어졌대. 이를 두고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수요가 줄어서’라는 분석이 나왔어.
한의사, 비뇨의학과 의사들에게는 미안
물론 모두가 날 반가워 한 건 아니야. 나 때문에 마음 불편한 이들도 많았거든. 그중에서도 한의원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지. 서울에서 25년째 한의원을 운영해 온 원장 A(56)씨는 “비아그라 등장이 한의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고 했어. 예전에는 매출 절반을 침, 나머지 절반은 한약 조제에서 얻었대. 그런데 지금은 한약은 20% 정도에 그치고, 큰돈 안 되는 침 치료가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야.
특히 한약 중에서도 남성의 하체를 튼튼하게 하고, 양기를 돋워주는 약제가 ‘알짜’ 역할을 했다고 해. 한약재 중 30%가 남성용이었고, 이 약 지으러 왔다가 아이들 성장, 아내 갱년기 등 다른 가족 약도 함께 조제했기 때문에 시너지가 컸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나타난 이후로 이 약제를 찾는 이가 많이 줄었다네. 한방에서는 정력을 키우는 것도 꾸준히 한약을 복용해 몸의 기를 키우는 식으로 접근했지만, 나는 먹는 즉시 효과를 보는 스피드와 간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니 밀린 거지. 게다가 2000년대 들어 한의대 졸업생이 대거 늘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한의원들이 곤란함을 겪게 됐다는 말을 듣고 괜히 미안해지더라고.
비뇨의학과(옛 비뇨기과) 의사들도 속이 많이 상했다고 들었어. 내가 등장하기 전에는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서는 비뇨의학과를 찾았고, 주사치료나 수백만 원 하는 인공 보형물 삽입 수술을 받아야 했지. 그러나 내가 태어나면서 웬만하면 약 하나로 처리가 가능하게 됐으니 타격이 컸다는 거야. 또 하나. 내가 전문의약품이라 의사 처방이 필요한데 꼭 비뇨의학과 의사들만 처방하는 게 아니라 내과, 가정의학과 의사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되다 보니 발기부전은 비뇨의학과의 전유물이라는 기존 틀도 깨졌다는 거야.
내가 너무 잘나가? 정치기사 소재로 등장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일 때 내가 정치뉴스에 등장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가 나를 사서 보관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밝혀졌는데, 나도 놀랐어. AP통신은 ‘푸른 집, 푸른 알약(Blue Pills in Blue House)’이라는 제목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AFP통신은 비아그라 논란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은 결혼하지 않았으며, 알려진 파트너도 없다’는 설명을 붙였지.
당시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이 언론에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치료제긴 하지만 고산병 치료제도 된다”며 “아프리카 고산지대 순방에 대비해 고산병 치료제로 구입했지만 한 번도 안 써서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어. 같은 해 5월 박 전 대통령이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를 방문했던 때를 말한 모양인데. 사실 내가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어.
고산병은 고지대에서 산소가 부족해 일어나는 증세인데, 내가 혈관을 확장하면 산소가 빠르게 공급돼 증상을 완화한다는 설 때문인 것 같아. 국내에서도 여러 의사가 ‘높은 산에 가려고요’라는 말만 듣고도 고산병 예방약으로 나를 처방해 주곤 해. 논란이 일자 우리 회사(한국 화이자)가 나서서 “국내에 유통되는 비아그라는 발기부전과 폐동맥 치료제 두 가지 용도로만 허가받았으며, 고산병 예방약으로서 사용은 허가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어. 심지어 2005년 미 식품의약국(FDA)은 나를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로 승인해 줬고, 내 쌍둥이 ‘레바티오’가 태어났지만 시판 후 연구에서 사망 사례가 보고되면서 2012년부터 소아 폐동맥 고혈압에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어.
분명한 건 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오남용 우려 의약품이라는 사실이야. 지난달 초 태국 푸껫공항에서 20대 한국계 미국인이 공항내 매장에 들어가 기물을 부수고, 자신의 배설물을 주변 승객에게 던지는 기행을 저지르다 공항 경찰과 직원 6명이 무력으로 겨우 제압했다는 기사가 났어. 그런데 공항 측 조사에서 그는 “비아그라를 너무 많이 먹어 의식을 잃었다”고 했대. 20년이나 된 나를 몰라도 너무 몰라 벌어진 일이야.
심혈관 계통에 이상 있는 환자는 실데나필로 인해 혈류량이 갑자기 상승하면 부정맥 혹은 심정지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하잖아. 또 협심증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산화질소공여제나 질산염제제와 함께 먹으면 급성 저혈압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있어.
가격 확 내린 ‘조카’도 태어나
얼마 전 미국에서 조카가 태어났어. 지난해 12월 초 나를 복제한 하얀색 약이 판매에 들어갔다는 소식 봤니. 가격은 나의 절반. 그동안 미국에서는 내 주 성분인 실데나필을 팔 수 있는 권리가 화이자에게만 있었지만 조만간 특허가 풀릴 것을 앞두고, 값싼 복제약이 쏟아질 것에 대한 대비책을 화이자 스스로 마련한 것이야. 실제 세계 1위 복제약 전문 업체 테바가 나를 본떠 만든 약을 이미 출시했지.
이런 상황은 한국에선 오래전에 벌어졌지. 내가 원조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판매 성적이 예전 같지 않거든. 나를 만든 화이자가 원료물질, 제조방법 등에 대한 특허를 나라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허가 풀리는 시점이 같지 않고, 그 중 한국은 비교적 빨리 풀렸지.
2012년까지만 해도 나의 영원한 라이벌 시알리스(Cialis)와 1,2위를 다퉜지. 하지만 2012년 내 특허가 풀렸지. 그리고 한미약품이 나를 본 떠 만든 팔팔을 내놓으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어. 나를 처방한 액수가 232억3,000만원에서 125억4,000만원으로 절반으로 감소했고, 순위도 3위로 떨어졌어. 그러다 2015년 시알리스의 특허가 풀리면서 한미약품이 시알리스의 복제약 ‘구구’를 선보였고, 이 친구한테도 밀려서 4위로 내려앉았어. 시장은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내 처방액은 계속 내려가고 있으니 좀 슬프지.
이태영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의 분석을 보자. “발기부전치료제처럼 질환의 치료보다 삶의 질과 관련된 증상을 개선해 주는 의약품인 ‘해피드럭(Happy drug)’은 건강보험 처리가 안 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격이 가장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됩니다.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가 풀리는 시점에 맞춰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복제약을 내놓으면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에 성공했죠.”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영업, 마케팅 전략 덕을 톡톡히 봤다는 평가도 내놓더라. “한국화이자는 용량이 가장 큰 100㎎ 위주로 영업을 했지만, 많은 사람이 쪼개 먹거나 지인들과 나눠 먹었어요. 후발주자인 한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50㎎ 위주로 마케팅을 했죠. 또 한국화이자는 처방을 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한 반면 한미는 약사들을 상대로 영업을 했어요. 환자들이 비아그라 처방전을 들고 와도 약사들이 팔팔을 대체조제해 주는 식이었죠. 한미의 집요한 마케팅에 비아그라는 속수무책이었던 셈이죠.”
미국서 태어난 조카가 당장은 한국에 올 계획이 없다고 하니, 당분간 한국에서 과거의 인기를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난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성생활의 보조도구로서 사회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충실할 뿐이야. 부디 나를 너무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말아줬으면 해. 그럼 안녕.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