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에서 계속 죽을 쑤다가 수능은 잘 볼 수 있는 걸까. 수능 직전 낮은 모의고사 점수는 ‘트릭’이라는데 본 시험에서는 달라질까.
축구대표팀을 보는 팬들의 심정이 이와 같다.
신태용(49)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7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2군에 가까운 볼리비아를 상대로 득점 없이 비겼다. 선수들은 이틀 전인 5일 강도 높은 파워 프로그램을 소화해 몸이 무거웠다. 신 감독은 이날 손흥민(26ㆍ토트넘), 이재성(26ㆍ전북) 등 주력 선수를 벤치에 앉히고 대신 김신욱(30ㆍ전북),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 투 톱을 선발로 출전시킨 것에 대해 “(김신욱-황희찬) 투 톱은 트릭이었다. 속 시원하게 말씀 못 드리는 부분이 있다. 비공개 훈련 때 가상의 스웨덴을 만들어놓고 담금질하고 있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11일 세네갈과 평가전은 전면 비공개다. 볼리비아전 경기력이 연막인지 아니면 진짜 우리 실력인지는 열흘 남은 스웨덴전(18일 오후 9시)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많은 팬과 미디어들이 반신반의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단 신 감독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지금 ‘좋다’ ‘나쁘다’ 평가는 안 하겠다. 계속 경기력이 안 좋고 베스트11도 바뀌고 있는데 감독이 ‘작전’이라고 하니 지금은 믿어야 한다”면서도 “우리의 것을 숨기기 위해 연습경기에서 준비한 걸 보여주지 않는다는 게 사실 일반적이지는 않다. 아주 특별한 경우다. 그래서 나도 스웨덴전이 궁금하다”고 밝혔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 역시 답답한 경기력에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신 감독이 ‘트릭’이라고 했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지금은 믿고 기다릴 때”라고 강조했다. 설기현 성균관대 감독은 “자세한 대표팀 내부 사정을 밖에서 알 수는 없다. 감독이 잘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마주치는 태극전사들의 얼굴에는 상당한 부담감이 엿보인다. 팬들은 연일 날 선 비난을 쏟아내고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니 그럴 만도 하다. 주장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은 “최종예선부터 많은 분들께 ‘기대해 달라’,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어느새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설 감독은 “월드컵이 피부로 더 와 닿고 실감이 날 시기다. 당연히 부담이 클 거다. 서로 격려하며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안 위원은 “선수들이 지금 굉장히 예민할 거다. 배가 부를 만큼 욕을 많이 먹지 않았느냐. 이제는 더 먹을 욕도 없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볼리비아전 직후 정우영(29ㆍ빗셀 고베)과 손흥민의 불화설까지 터졌다. 종료 휘슬 직후 손흥민이 지나가며 말을 건네자 정우영이 잔뜩 굳은 얼굴로 뭔가 항변하고 김영권(29ㆍ광저우)이 말리는 듯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았다. 대한축구협회는 “내부 분열은 사실무근이다. 종료 직전 프리킥 장면에서 의견을 주고받은 것뿐이다. 두 선수는 ‘이렇게도 오해 받을 수 있구나’라고 함께 웃으며 이 동영상을 봤다“고 곧바로 해명했다.
경기 중 선수들끼리 때로 얼굴을 붉히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감정을 그라운드 안에서 깨끗하게 털고 나오면 된다. 반대로 실제로 일부 선수들끼리 감정이 상해 있다면 전체 팀워크에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위원은 “나도 남아공월드컵(2010)때 경기 중 후배들에게 인상 쓰고 쓴 소리도 했다. 중요한 건 왜 그렇게 하느냐다. 팀이 잘 되기 위해, 또 서로 더 잘 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설 감독도 “다들 승부욕이 있으니 충돌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경기 후다. 아까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받아주면서 서로 존중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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