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
15일 백암아트홀서 협주
이런 마법사가 또 있을까. 그의 손이 ‘마법의 주름상자’에 닿을 때면 ‘교회 오빠’ 같은 가수 김동률(노래 ‘연극’)과 무기력의 끝을 보여줬던 방송인 정형돈(‘순정마초’)도 관능을 입는다. 윤상과 이적 등 이 사람의 연주에 매혹된 음악인이 한둘이 아니다. 주름통을 늘여가며 내는 매혹의 소리, 반도네온(손풍금) 연주자 고상지다. 그와 함께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또 한 명의 여성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다. 가수 아이유는 강이채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에 반해 지난해 낸 앨범 ‘꽃갈피 둘’에 그를 초대(‘비밀의 화원’)했다. 강이채는 바이올린을 활이 아닌 손으로 튕겨 풀잎에 통통 튕기는 물방울 같은 소리로 화원으로 인도했다.
오래된 악기로 마법 같은 소리를 내는 두 여성 음악인이 ‘일’을 벌였다. 고상지와 강이채는 15일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더 컬래버레이션’을 연다. 두 사람이 함께 공연하기는 처음이다.
어떻게 만났을까.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고상지가 강이채의 1집 ‘래디컬 파라다이스’(2016) 수록곡 ‘나우 아이 씨’ 등의 연주에 참여하며 친분을 이어왔다. 합동 공연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한 건 고상지였다.
“작업하면서 (강)이채의 바이올린 소리에 끌렸어요. 참 (연주가) 개성 있다고 할까요? 탱고 음악에 바이올린 연주하면 좋은 곡이 많거든요. 이채와 꼭 한 번 공연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같이하게 됐어요.”
강이채도 “미국에서 유학 생활할 때부터 (고)상지 언니 음악에 끌렸던 터라”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채 연주를 들으면 자괴감에 빠져요.”(고상지) “언니 연주 소리 옆에서 듣고 있는데 행복하더라니까요. 영감도 많이 받고요.”(강이채).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 합동 공연을 준비하며 얻는 즐거움과 고충 등을 격의 없이 주고받는 두 사람은 자매나 다름 없었다.
고상지와 강이채는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 거장인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1)의 명곡 ‘친친’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OST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협연한다. 강이채의 1집에 실린 ‘더 바이올린’ 등 두 사람의 솔로 앨범에 실린 곡도 함께 연주할 예정이다.
고상지의 음악 세계가 밤이라면 강이채는 낮이다. 고상지가 시간을 거꾸로 흘러 고혹(‘마지막 만담’)을 소리로 진하게 우려낸다면, 강이채의 소리는 볕이 따뜻한 숲의 정령들의 찬가(‘안녕’)처럼 찬란하다. 음악색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잇는 다리는 피아니스트 최문석. 고상지, 강이채와 공연 및 앨범 작업을 함께 한 그는 클래식뿐 아니라 재즈, 탱고 장르에도 능숙하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도 있다. 일탈로 새 삶을 찾았다. 카이스트를 다녔던 과학도(고상지)는 우연히 반도네온에 빠져 학업까지 포기한 채 아르헨티나까지 가 거리의 악사가 됐다.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워 클래식 한 우물만 팠던 소녀(강이채)는 고3 때 프랑스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1908-1997)의 음반을 듣고 재즈 음악으로 선회, 클래식의 이단아가 됐다.
“클래식과 달리 대중음악 쪽엔 여성 연주자가 정말 드물어요. 그래서 상지 언니를 만날 때마다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되죠.”(강이채)
도전과 파격으로 얻은 건 사람이었다. 고상지에 김동률과 유희열, 강이채에 아이유는 힘을 준 음악인들이다.
“데뷔할 때 (유)희열 선배님과 이적 선배님이 ‘오타쿠(마니아) 콘셉트’로 나가라며 작전을 짜 줬어요. (김)동률 오빠는 모든 일을 재빠르게 진행해 참 일하기 편해요. 편곡을 해 보내면 피드백도 구체적으로 주고요. 다 떠나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가끔 전화 통화할 때 기분이 좋아져요. 작업할 때 야식으로 햄버거 등을 먹는데 그 좋은 목소리로 ‘너깃 맛있다’라고 하는 걸 듣고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하하하.”(고상지)
“아이유가 제 노래 ‘어지러워’를 좋아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아이유와 ‘꽃갈피 둘’ 작업을 했죠. 이상은 선배님의 ‘비밀의 화원’ 리메이크를 준비한다고요. 듣자마자 가슴에 불이 확 댕겨지더라고요. 저도 이상은 선배님 음악 너무 좋아하거든요. 의욕이 넘쳐 편곡을 아홉 가지 버전으로 준비한 뒤 바로 어머니가 사시는 진주 집으로 내려갔어요. 어머니의 기타를 치는 데 바로 멜로디가 떠오르는 거예요. ‘이거야’ 싶어 바로 최종 편곡을 했죠. 나중에 아이유의 목소리가 담긴 데모(미완성)버전 듣는데 어휴... 너무 좋더라고요.”(강이채)
고상지는 요즘 바로크 음악에 꽂혀있다. 강이채는 흑인음악과 재즈에 도전하는 꿈을 꾸고 있다. ‘더 컬래버레이션’ 후 두 사람은 또 다른 합작을 기대했다.
“이채랑 피아졸라를 주제로 공연하고 싶어요. (피아졸라의) ‘사계’를 협연하는 식으로요. 연습하면서 연주 듣다 보니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저도 좋지만 관객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거라 믿어요. 이채가 보컬의 이미지가 부각됐지만, 연주도 진짜 좋거든요.”(고상지)
“전 언니랑 관객을 우주로 인도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그 도구가 탱고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하하하.”(강이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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