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역적 체제 보장 받기 전에
미국에 고스란히 무장해제 어려워
보유 핵 신고ㆍ봉인하는 선에서
북미, 절충점 찾을 가능성도
6ㆍ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판문점 북미 실무협상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비핵화 이행 초기 단계에 북한이 핵탄두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보유 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냐 여부다. 과거 최종 단계로 미뤄뒀던 조치를 과감히 앞으로 당겨와 비핵화 의지를 보여 달라는 게 미국 측 요구지만,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 의지를 아직 믿지 못하는 북한 입장에선 선뜻 수용하기 힘든 선택지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회담 닷새 전인 7일까지 협상이 교착 중이라는 게 소식통들 전언이다.
북한 핵무기 구성 요소들의 초기 반출ㆍ폐기는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다. 일부 반출에라도 합의한다면 25년여 간의 북핵 협상 역사상 처음으로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으로선 협상 카드를 조기에 소진하고 군사 기밀을 상대국에 고스란히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는 부담이 있다. 외교가에는 “북한이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핵무기를 쉽게 내주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핵탄두 운반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반출은 그나마 북한이 입을 타격이 적고 본토 타격 가능성을 지우고 싶은 미국으로서도 구미가 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나 비핵화와 연관성이 약한 데다 기술만 보유하고 있으면 단기간 내 재개발이 가능해 상징적 조치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ICBM이 재진입 등 핵심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미완성품일 공산이 커 미국 입장에서도 흡족하지 않을 수 있다.
고농축우라늄(HEU)과 플루토늄 등 무기화 가능한 핵물질 반출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경우 비핵화 협상의 신호탄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ICBM 폐기는 북한이 원래 의도한 군비 축소 정도지만 핵물질 반출은 본격적 비핵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핵물질이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 등으로 반출되면 미국은 농축법, 농도 등 베일에 싸여있던 북핵 관련 정보를 확보하게 된다.
핵탄두를 포함한 핵무기의 선(先)반출은 북한의 최종 비핵화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조치다. 핵ㆍ미사일 기술 수준을 미국에 공개하고 사찰 단계 진입을 수용한다는 의미여서다. 하지만 그래서 이에 상응하는 불가역적 체제 보장 조치를 미국이 내놓기 전까지는 합의 도출이 힘들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핵무기가 외부로 반출되는 순간 북한 수뇌부는 엄청난 내부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은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이 보유 핵을 신고ㆍ봉인하게 하는 선에서 일단 절충점이 마련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어차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숨겨둔 핵무기가 쓸모 없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관계자는 “핵무기에 탑재된 금속 장치들은 꾸준한 보수(補修)가 필요하다. 특히 핵을 격발시키는 중성자원은 보수 없이 일정 기한이 지나면 제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미국도 이를 우려해 최근 보유 핵무기 내부 물질 교환을 시작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핵무기를 보수하지 않을 경우 무력화되는 시점을 10년 뒤 정도로 보고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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