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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컬러풀한 75가지 색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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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컬러풀한 75가지 색깔의 세계

입력
2018.06.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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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색깔에는 제 나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컬러의 말'은 그 이야기들을 잘 풀어낸 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색깔에는 제 나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컬러의 말'은 그 이야기들을 잘 풀어낸 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남자들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검은 옷으로 온 몸을 둘러싸야 하는 이슬람 여성들이 속옷은 화려한 걸 입는다는 얘기. 그런데 이게 정말 이슬람만의 얘기일까. 서구 또한 기독교가 강력할 땐 ‘색깔 혐오’가 만만치 않았다. 고대 그리스ㆍ로마 신전과 동상들이 하얀 대리석이 아니라 실은 알록달록 채색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장탄식이 나올 정도로. 조각가 로댕은 “절대로 채색된 적이 없노라고 가슴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며 울부짖을 정도였다. 서구에서 조명, 미술, 인테리어 같은 게 발달한 것도 화려한 색을 집안에서만 즐기려다 보니 그리 됐다는 해석도 있다. 똑같은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가 백의(白衣) 민족이란 말 또한 사실 부끄러운 얘기 아닐까. 순수하라는 강박, 억압이 종교적이었다는 얘기니까.

이 흰색을, 저자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렇듯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것들이 전부 거듭해서 흰색과 관련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 색의 가장 깊은 관념 속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뭔가가 도사려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피의 붉은 색보다 더 많은 공포를 영혼에 안겨준다.” 진리ㆍ영원ㆍ순수 같은, 궁극적인 그 무엇에 대한 편집증이 결국 인간을 파괴할 것이라 경고하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한 구절을 뚝 떼온다. ‘화이트가 실은 블랙홀’이란 명제를 보여주는데 이만한 인용은 없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저자의 내공과 솜씨가 감지되는지.

컬러의 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지음ㆍ이용재 옮김

윌북 발행ㆍ316쪽ㆍ1만5,800원

‘컬러의 말’은 저자가 ‘색깔’을 테마로 잡지 엘르 데코레이션에 연재한 내용 가운데 독자들 반응이 좋았던 75편, 그러니까 흰색 계열에서 검은색 계열까지 75가지 색깔에 대한 글을 모았다. 색깔 책은 이미 많다. 대개는 안료나 물감에 대한 세부적 이야기이거나, 정치사회적 상징성에 대한 거시적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그처럼 지나치게 가깝거나 먼 위치가 아니라 중간쯤에 서서 역사, 문학, 미술,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의 여러 이야기들을 매력적인 필체로 배합해뒀다. 이런 류의 글에서 예상되는 스타일리시하기만 한 말장난이 아니라, 내용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이다. 그 덕에 책을 감싸고 있는 여느 화려한 색보다 저자가 쓴 글의 검은 색이 훨씬 더 화려하고 다채롭다. 색깔 이야기 중엔 물론 ‘잉크 색’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래도 서구적 맥락이 우세하지만, 저자의 광범위한 공부와 조사를 뒷받침하듯 고구려 고분 벽화나 불교 등 아시아권에 대한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색깔에 대한,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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