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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말 앞에 둔 마차'의 우격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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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말 앞에 둔 마차'의 우격다짐

입력
2018.06.07 19:00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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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폭탄은 '중국제조 2025' 겨냥

최저임금 논란, 혁신성장 중요성 일깨워

미래 성장 등 큰그림 보는 안목 키워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달 31일 열린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달 31일 열린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중국제조 2025'가 국가 차원에서 2015년 마련돼 2025년까지 10개 핵심산업을 세계 1~3위 수준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임을 알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덕분이다. 그는 4월 초 중국에 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폭탄'을 투하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반도체ㆍ발광다이오드와 함께 정확히 '중국제조 2025'의 10대 산업을 정조준했다. 5G 통신 등 차세대 IT기술, 로봇 및 첨단 공작기계, 항공우주, 해양 엔지니어링 및 하이테크 선박, 선진 궤도교통,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장비, 농기계 장비, 신소재, 바이오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등이 그것이다.

중국 국무원이 추진한 이 프로젝트는 미국과의 경제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첨단기술에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취지 아래 사물인터넷ㆍ빅데이터ㆍ클라우딩컴퓨팅 등 정보기술과 결합한 산업 개혁과 고도화를 추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이미 통신설비ㆍ궤도교통ㆍ전력 등 3개 영역에서 선두권에 올랐고, 나머지 산업의 로드맵도 최근의 기술변화를 반영해 가속도를 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위기감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정책국장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중국 2025는 중국이 세계의 모든 산업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것이며 나머지 국가는 어떤 미래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백악관은 중국이 보복을 다짐하자 행정명령 시행을 한때 유예했다가 지난달 말 다시 강행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그동안 첨단산업 분야의 중국 유학생 비자를 1년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의 인해전술식 '제조업 굴기'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중국 최고과학자 연례회의에서 “핵심기술은 마음대로 살 수도, 구걸할 수도 없다"며 “인터넷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첨단기술의 융합을 통해 중국이 세계 경제가치 사슬의 고점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검색엔진 바이두(百度)가 향후 3년간 10만 명의 AI 인재를 양성해 5년 뒤 AI분야 1위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뉴스도 나왔다.

G2의 불꽃 튀는 미래경쟁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어떨까. 문재인 정부는 늦게나마 지난해 말 혁신성장을 위한 8대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했다. 드론 초연결지능망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핀테크 재생에너지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등이 그 내용이다. 이후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과 공정경제를 통한 따뜻한 성장, 정의로운 성장이 정부 정책기조임을 강조하면서도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 말이 있어야 마차를 끌고갈 수 있다는 인식은 분명했던 셈이다.

하지만 얼마 전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새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선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더욱 분발하고 규제혁파에도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말 이후 벌써 3번째 질책이다. 대통령이 이렇게 챙기는데도, 또 주변 경쟁국이 기술경쟁력 선점을 위해 뜀박질하는 것을 보면서도, 정부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니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개헌이나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여온 적극성과 애착으로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치우는 작업을 주도했으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의 최저임금 긍ㆍ부정 효과 논란은 우리 경제의 큰 그림은 보지 못한 채 내 주장만 고집하는 관료 및 지식사회의 철학 빈곤을 그대로 드러냈다. 청와대가 보고싶은 통계만 골라 정책 효과를 과대포장한 것이 시비의 출발이지만, 단순히 숫자만 놓고 누가 옳고 그르냐는 식의 선악 개념으로 답을 찾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정부가 정체성을 걸고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은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숱한 위험과 난관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길이 아니니 되돌아가자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슬기로운 발상은 성장의 방식 대신 성장의 원천인 혁신성장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 최저임금 효과 옹호에 쏟는 정부의 시간과 에너지는 일자리 및 소득 마차를 끄는 혁신 동력에 쏟아야 한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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