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유세전 달아오르며
사람 많이 다니는 길목 ‘불법점거’
자전거도로도 안전 배려 없어
경찰,공무원은 단속에 뒷짐
청와대 소음 피해 청원만 200여건
“불편함 탓 유권자 반감 키워”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강태경(37)씨는 요즘 자전거를 타고 거리에 나서기가 무섭다. 자전거전용도로에 불법 주ㆍ정차된 선거유세차량들을 피해 차량이 쌩쌩 달리는 자동차도로로 달려야 할 때가 늘면서다. 강씨는 6일 “학생들이 선거유세차량을 피해 차도로 달리는 모습을 볼 때면 더 아찔하다”며 “홍보 효과가 높은 장소를 선점하고픈 후보 쪽 입장은 이해하지만, 시민안전에 대한 배려조차 없는 후보를 뽑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6ㆍ13지방선거 유세전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기본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않은 등 ‘민폐 유세전’을 펼치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따끔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이유로 무질서한 선거운동 단속에 뒷짐진 모습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직접 ‘위법행위가 잦은 후보는 뽑지 않겠다’라며 투표를 통한 응징을 벼르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선거 유세전의 역효과는 도로 위에서 가장 뚜렷하다. 이날 서울 지하철3호선 구파발역 앞 도로엔 불법 주ㆍ정차 단속카메라가 설치돼 있음에도 5대가 넘는 선거유세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선거운동원은 “동네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벌금이 부과되더라도 서로 이 자리를 선점하려고 한다”고 했지만, 상인과 주민들은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의 착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상인 이모(45)씨는 “평소 비교적 원활했던 이곳 일대 교통이 선거유세차량의 불법 주ㆍ정차로 복잡해져 상인들 불만이 크다”고 했고, 주민 황재웅(32)씨는 “버스정류장에 근접해 세워 놓은 유세차량 때문에 버스를 탈 때 불편이 커 홍보 효과는커녕 반감만 크다”고 했다. 5일 유세차량을 타고 여의도역 부근 대로를 역주행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쏟아진 여론의 뭇매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확성기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시민들 목소리도 여전하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엔 6일까지 ‘선거유세 소음 관련 규정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200건 이상 올라왔을 정도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주부 신모(34)씨는 “두 살배기 딸이 낮잠을 잘 시간에 선거유세 확성기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면서 “주부들 사이에선 ‘확성기 홍보가 유독 큰 특정 후보는 꼭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시ㆍ군ㆍ구의원, 교육감 선거 등이 한꺼번에 치러져 안 그래도 후보 자질평가가 어려운 마당에, 주민에게 반복적으로 불편을 끼치는 후보는 일단 거르고 투표하겠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해 움직이는 건 정치인에게 기본 중 기본”이라며 “유권자 의식은 날로 높아지는데, 후보자들은 여전히 20세기부터 해오던 ‘세 몰이’식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확성기 유세를 없애고 공약 중심 유세전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선거운동 관련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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