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대리행사 금지 첫 해
상장사 주총서 96개 안건 부결
“서면ㆍ전자 투표 등 활성화 필요”
코스피 상장사인 에이프로젠제약은 오는 11월 올해 네 번째 정기주주총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 3월과 4월 모두 세 차례의 주총을 열었지만 번번이 정족수 미달로 개최가 무산돼 재무제표와 이사ㆍ감사의 보수 한도 승인 안건 등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이프로젠제약은 최대주주 지분이 7.35%에 불과하고 나머지 92.65%는 3만9,652명의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어 주총 안건 통과에 필요한 25% 지분을 확보하는 데에 실패했다.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이 전면 폐지된 후 처음 열린 올해 주총에서 96개 안건이 ‘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것으로 집계됐다. 6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 1~3월 정기주총을 연 코스피ㆍ코스닥 상장사 1,789개사(코스피 704개사, 코스닥 1,085개사)를 분석한 결과, 총 66개사의 주총에서 96개 안건이 부결됐다. 섀도보팅 폐지 유예기간이었던 2016년(7개)과 2017년(9개)의 10배도 넘는 규모다.
주총 안건 통과를 위해서는 의결권이 있는 전체 지분의 4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13개 회사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모든 안건이 부결됐다. 대주주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는 감사ㆍ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처리하지 못한 곳도 49개사에 달해 다음 주총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정족수 미달로 재무제표 승인이 무산되자 감사의 동의를 받아 이사회에서 처리하는 ‘편법’을 쓴 회사는 4곳이었다. 7개 회사는 신규 사업 등을 승인받기 위해 정관 변경 안건을 논의했지만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해야 하는 정관변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섀도보팅이란 투자자를 대신해 주식을 관리하는 예탁결제원이 주총에 참석하지 못한 주주의 의결권을 실제 참석 주주의 찬반 비율에 따라 행사하는 제도다. 상장사들은 의결권 정족수를 채울 수 없을 때 예탁결제원에 요청해 섀도보팅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2014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폐지가 결정된 뒤 3년간 유예기간을 거쳤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섀도보팅으로 정족수를 채우던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업들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주총이 특정 날짜에 집중되고 전자투표, 서면투표 등 다양한 의결권 행사 제도가 정착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올해 국내 상장사의 주총 집중도(주총이 가장 많이 열린 3일간 개최 비중)는 60.5%로 지난해(70.4%)에 비해 다소 낮아졌지만 금융당국이 목표로 삼은 40%대와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었다. 2014년 미국(10.3%)이나 독일(13.4%)은 물론 일본(48.4%) 보다 높다.
고태경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상장사는 서면투표, 전자투표 등 다양한 의결권 행사 수단을 제공하고 소수주주들의 의결권 행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