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등본 확인 필수” 당부
6년 전 국민대 진학을 위해 전남 고흥군에서 상경한 A(25)씨는 자신이 살던 원룸의 전세 임대차계약기간 만료일을 앞둔 지난 2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2년 전 자신이 건물주 남편이라며 계약서를 대신 작성해 보증금을 입금 받았던 건물관리인 김모(60)씨가 보증금 4,5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채 돌연 잠적한 것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새로 구한 집을 계약할 수 있었던 A씨는 황급히 같은 건물 4층에 살던 건물주 B씨를 찾아가 “남편이 받아간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김씨는 내 남편이 아니다”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A씨는 비슷한 시기 계약만료를 앞둔 다른 피해자 두 명과 함께 성북경찰서에 사기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관리인 잠적 소식이 퍼지자 각각 1,000만~5,000만원의 보증금을 낸 다른 세입자 15명도 추가로 김씨를 고소해 고소인은 총 18명으로 늘었다. 피해액은 알려진 것만 5억4,000만원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A씨처럼 지방이나 수도권에서 대학 생활을 위해 상경한 이들로, 부모가 힘들게 마련해 부쳐준 쌈짓돈이나 자신이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 보증금을 마련했다.
피해자 조사를 통해 이들의 억울한 사정을 접한 경찰 발걸음이 빨라졌다. 3월부터 건물주 등을 불러 김씨의 예상 소재지를 파악한 경찰은, 통신수사까지 벌인 끝에 지난달 23일 경기 광주시 지인 집으로 도피한 김씨를 검거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방에서 상경해 원룸을 구하는 대학생 대다수가 임대차계약 경험이 적고, 함께 온 부모조차 대부분 자신의 신분에 대해 의심하지 않자 이들을 속여 보증금을 가로채기로 마음 먹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0년부터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던 그는 2015년부터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야금야금 빼돌려 개인 빚을 갚거나 생활비로 썼다.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땐 다른 세입자가 낸 보증금을 내주는 방식으로 ‘돌려 막기’ 해 왔으나, 그마저도 어렵게 되자 지난 2월 잠적했다. 다만 이때까지 건물주에겐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월세를 꾸준히 전달해 의심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도주 우려가 있는 김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해 지난달 30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동산 계약 시엔 등기부등본을 꼭 확인해 자신이 건물 소유자와 직접 계약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