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ㆍ알루미늄 25%ㆍ10% 관세
EU, WTO 제소 첫 단계 착수
캐나다ㆍ멕시코, 보복관세 선언
미국이 패권 경쟁국을 자처하는 중국에 이어 외교ㆍ안보 측면에서는 동맹관계인 유럽연합(EU)ㆍ캐나다ㆍ멕시코 등에게도 ‘관세폭탄’을 퍼부었다. 해당국들의 보복조치 공언으로 미중 간 무역전쟁에 이어 미국과 동맹국간 통상전쟁까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칫 자유무역의 근간이 흔들리고 글로벌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1일(현지시간) 자정부터 EU,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월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당 국가들과의 협상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만족할 만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8일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라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가 시행 전날(4월22일) 추가협상을 이유로 잠정 유예한 조치를 강행한 것이다. 잠정유예 7개국 중에선 대미 수출물량을 2015~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로 제한키로 한 한국만 관세 면제가 최종 확정됐다.
미국의 전격 조치에 해당국들은 강력 반발하며 즉각 보복을 공언하고 나섰다.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관세 부과는 보호무역의 전형”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한 것과 똑같이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는 곧장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이 부과한 관세 조치에 대한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양자협의는 통상 WTO 제소의 첫 단계를 의미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맞대응을 경고했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며, 단호하고 상응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소개했다. 앞서 EU는 미국이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오렌지ㆍ청바지 등 28억유로(약 3조5,000억원) 상당의 미국산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외무장관을 대동한 채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과 같은 규모인 166억캐나다달러(약 13조7,775억원) 상당의 미국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매우 나쁜 결정에 대한 캐나다의 대답”이라고 말했다. 트뤼도 총리는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논의가 진행되던 와중에 미국의 일방 조치가 발표되자 예정돼 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도 취소했다.
멕시코 경제부도 성명을 통해 “미국과 같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멕시코는 보복 대상에 미국산 철강ㆍ알루미늄과 함께 오렌지쥬스ㆍ돼지고기ㆍ소시지ㆍ포도 등 농축산물을 대거 포함시켰다.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미국 중서부 농장지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전격적인 관세 부과 결정은 협상용 카드에 가까워 보인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의 이번 조치가 EU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은 0.1% 미만이다. 하지만 미국이 오랜 우방국을 대상으로도 일방 조치를 취한 데 대한 반발이 크고, 경우에 따라 무역갈등 규모가 확대될 경우 1929년 대공황과 비슷한 경제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공화당 소속 밴 세스 상원의원은 “미국을 1929년으로 돌아가게 해선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했다.
통상분야에서 미국의 일방적 조치가 잇따르면서 중국은 이를 새로운 통상질서 구축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 기회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영매체를 내세워 국제 통상질서를 ‘미국 대 비(非)미국’ 구도로 정립하려 하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와 글보벌타임스는 사설과 논평기사 등에서 “미국의 일방적ㆍ강압적 조치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덫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면서 “중국은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수호하려는 전 세계 모든 나라와 함께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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