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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여성에 대해 말할 때

입력
2018.06.01 14: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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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같은 지면에서 근무 중에 사망한 구로 이마트 계산원을 애도하는 글을 썼다. 칼럼이 나간 후로 소셜 미디어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논란의 지점은 여성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그녀가 처한 노동환경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왜 여성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만 말하느냐, 막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남성 노동자도 있다’, ‘왜 노동자 편만 드느냐, 관리자나 기업의 입장도 담아야 공정한 글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칼럼은 형식적 분배나 균형으로 공정함을 삼는 형식의 글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공정함이란, 기업이나 자본 중심 담론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거나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여성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이 건설 현장이나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남성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의 죽음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애도하는 것에 대해 으름장을 놓는다. 반대로 남성 노동자가 죽었을 때에는 ‘여성 노동자’의 존재나 죽음에 대해 묻지 않으면서 말이다.

유독 여성들의 구조적 취약성이나 성차별을 말할 때, ‘그럼 남성은? 남성도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성차별에 기인한 구조와 문화를 비판하는데 개인의 처지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여성을 비방하고 혐오한다. 또는 그것을 개인에 대한 인식 공격이나 남성 일반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혐오는 조롱과 비난을 동반하며, 혐오 대상을 드러내면서 존재를 삭제시키는 방식이다. 그래서 여성의 언어가 공론장에 잘 드러나지 못하도록 한다.

미투 운동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용기 내어 폭력을 고발했을 때, 피해자의 말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는 이도 있지만, 증거가 나올 때까지 꽃뱀 취급을 하며 오히려 가해자를 동정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여성은 피해자가 한 명일 때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다수의 피해자가 나서야 겨우 신뢰를 얻는다. 또 몰래카메라 영상물이 공공연하게 유포되어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때조차, 피해 사실에 대한 상황을 납득시킬 것을 강요받는다. 영상물 자체가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사례는 여성의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 유투버 여성이 비밀 촬영회를 폭로했을 때, 사람들은 사건이 지닌 폭력성에 주목하기보다 ‘돈’과 ‘자발성’을 들먹이며 피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묵살하려고 했다. 심지어 그녀의 말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 청원에 오른 여성 연예인도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거나 폭력을 고발할 때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상상초월의 협박과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는 어린 시절 성대가 잘린 채 강가에 버려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들을 수 있지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녀의 직업은 항공우주 연구센터 새벽 청소부이다. 한편, 연구센터의 권력자이자 관리자(남성)가 등장한다. 그는 그녀가 말하지 못하는 것에 호감을 느끼고 자신이 원한다면 그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세계에서 그녀는 순응적이고, 온순하며, 말 못하는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녀는 주체적이고, 욕망에 솔직하며,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수화)을 할 줄 안다. 결국 그녀는 신념에 따라 실험실에서 미지의 존재를 탈출시키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때 관리자가 쏜 총에 맞는다. 이는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의 언어와 존재가 어떻게 삭제되는지 보여 준다.

여성에 대해 말할 때, 혹은 여성이 말할 때, 이것은 단순히 여러 입장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의 삶과 구조적 폭력과 그것으로부터 해방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왜 여성의 말을 두려워하는가.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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