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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봐야 싸움만…” 부모와 대화 피하는 젊은세대

입력
2018.06.15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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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얘기하면 일방적 설교만” 노인 기피ㆍ조롱으로 이어져
[저작권 한국일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태극기 들고 집회에 참가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여자들이 태극기 들고 집회에 참가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일부 노인들의 분노를 동반한 권위의식과 극우 편향성이 강화될수록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인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역으로 전체 노인들이 조롱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청년층의 이해 부족까지 결합되면서 세대 간 골은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젊은 세대는 정치 이슈를 아예 대화 주제에서 제거하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이다. 직장인 최모(33)씨는 수년 전부터 아버지가 거실에서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면 조용히 자리를 뜬다. 정의당 당원인 누나(36)가 결혼 후 이따금 집에 찾아올 때면 자유한국당 지지자인 아버지와 정치 이슈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해 봤자 항상 일방적인 설교만 듣게 돼 아예 안 하는 것이 집안의 평화를 위해 더 낫다”라고 말했다. 노인들 역시 젊은 세대와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일은 힘들기만 하다. 김판형(72ㆍ가명)씨는 “젊은층 대부분 보편적 복지에 열광하는데 노인 세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는데도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라며 “가까운 곳에 살아도 부모를 자주 찾지 않아 대화를 할 시간조차 없다”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노인들이 나이와 경험에 기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는 사이, 젊은 세대의 존경심은 사라지며 갈등은 커진다.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하모(27)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2년 전 지하철 1호선 회기역 앞에서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한 70대 할머니는 하씨를 포함 10여명 이상 늘어서 있던 마을버스 줄 맨 앞으로 갑자기 새치기했다. 이에 한 20대 여성이 “어르신 줄을 서야 한다”라고 말하자 이 할머니는 돌연 욕설과 함께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 부모도 없느냐”라며 심한 욕을 퍼부었다. 하씨는 “당시 지적했던 여성은 자리를 떴고 나 역시 기분이 언짢아져 같은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아 버스를 떠나보냈다”라며 “공중도덕이 부족한 노인에게 언제든 봉변을 당할 수 있단 생각에 버스에서도 되도록 노인을 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비용 200만원을 감수하며 4월이던 결혼식 날짜를 한 달 뒤로 미뤘다. 처음에 “자유롭게 결정하라“던 아버지(64)는 사주를 본 뒤 돌연 5월 중순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이씨는 “결혼 비용이 빠듯했지만 하도 강경하게 주장해 결국 날짜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라며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노인 세대의 권위 의식에 질린 젊은 층이 등을 돌린 사이 대화 단절의 악순환은 지속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노인인권 종합보고서 작성을 위해 전국 노인(65세 이상) 1,000명과 청ㆍ장년(18~64세)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사전연구에 따르면 ‘세대 간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노인층(51.5%)에 비해 청ㆍ장년층에서 87.6%로 훨씬 높게 나타났다. 조사를 맡은 원영희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 젊은 세대가 속한 학교 등 각종 집단은 노인에 대한 교육이나 세대 간 교류를 돕는 프로그램이 부재해 젊은 층의 노인 세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세대별 가지고 있는 경험에 대해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대 공존’의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갈등을 풀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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