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척지 3㎓ 이상 대역 개발
4G때보다 영역 40배 넓어
도달거리 짧아 회절성은 낮아
기지국 촘촘하게 설치하고
지연속도 0.001초까지 단축해야
KT는 지난달 30일 월 8만9,000원을 내면 LTE 데이터를 완전 무제한 쓸 수 있는 요금제를 출시했다. 기존에 있던 월 단위 기본 제공량과 접속 속도 제한을 풀어버린 요금제가 나오면 트래픽이 폭증할 텐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필재 KT 부사장은 이렇게 장담했다.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면 시설 투자를 늘리면 됩니다. 하지만 내년이면 5세대(5GㆍGeneration) 통신도 상용화되기 때문에 속도 지연 우려는 전혀 없습니다.” 땅에 더 많은 기지국을 설치하고, 새로운 통신 기술이 나오면 얼마든지 많은 가입자와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성통화도 간신히 되던 ‘벽돌폰’ 1G에서 LTE로 익숙한 4G까지, 30년이 흐르는 사이 데이터 전송 속도는 1만 배 빨라졌다. 이제는 4G보다도 20배 빠른 5G 시대가 코앞이다. 이 부사장의 ‘기지국 추가 증설’ ‘새 통신 기술’은 상상조차 버거운 속도의 변천사를 축약한 답변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전투가 있다. 주파수와의 전쟁이다.
무선통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에 정보를 실어 전달하는 기술이다. 전파는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면서 전달되는데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가 주파수다. 1초에 4번 진동하면 주파수는 4㎐가 된다. 무선통신에 사용되는 주파수는 300㎒에서 3㎓ 사이다. 300㎒면 1초에 3억번 진동하는 것이니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며 전달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무선통신의 속도는 이 대역의 주파수를 얼마나 넓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주파수라는 고속도로의 대역폭 즉, 차선 수를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아날로그 통신이었던 1G에서 문자도 전송할 수 있는 2G로 넘어올 때는 ‘다중 접속 기술’이 적용됐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한 번에 여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해 한정된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쓰는 기술”이라며 다중 접속 기술을 ▦시간분할방식(TDMA) ▦주파수 분할방식(FDMA) ▦코드분할방식(CDMA) 3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한 공간에서 세 커플이 대화해야 한다고 예를 들면, TDMA는 시간을 나눠 돌아가면서 커플당 5초씩 얘기하는 방식이다. FDMA는 커플들 사이 칸막이를 설치해 서로의 이야기가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CDMA는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같이 서로 다른 언어로 동시에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탄생한 3G부터 주파수 대역을 확대해, 세 쌍의 커플이 모여있는 공간을 넓혀 더 많은 커플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4G에서는 이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이 한 차례 더 넓어졌을 뿐 아니라, 떨어져 있는 주파수 대역을 묶어서 활용하는 기술 CA(캐리어 애그리게이션)도 도입됐다. ▦LTE ▦광대역 LTE ▦광대역 LTE-A ▦3밴드 LTE-A ▦기가급 LTE까지는 주파수를 묶는 경쟁으로 속도를 높였다.
LTE 때는 1차선 도로만 뚫려있어 속도가 75Mbps에 그쳤다. 이 1차선 도로를 2차선으로 넓힌 게 광대역 LTE다. 속도가 2배 빨라진다. 주파수로 치면 바로 옆에 있는 주파수를 붙여 하나처럼 사용하는 방식이다. 광대역 LTE-A에서는 2차선 도로(광대역 LTE)에다 조금 떨어져 있는 새 차선을 하나 더 뚫었다. 그곳으로도 차가 지나도록 하니 속도가 3배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주파수를 묶는 기술이 바로 CA다. 3밴드 LTE-A는 광대역 LTE에 떨어져 있는 주파수 2개, 총 3개를 묶어 속도가 4배로 올라갔다. 최근에는 SK텔레콤이 총 4개를 묶고 주파수 효율성도 강화해 75Mbps보다 13.3배 빠른 1Gbps까지 속도를 올린 기가급 LTE를 선보였다.
이렇게 계속 붙여나가면 좋으련만,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다. 이제 더 도로를 뚫을 수 없을 정도로 주파수가 포화 상태다. 내년 3월 시작되는 5G는 바로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주파수인 3㎓ 이상의 고주파 대역에 도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 미개척지는 4G 때보다 10배에서 최대 40배까지 더 땅이 넓다는 게 통신업계의 분석이다. 이론상으로 5G 속도가 현재의 최신 LTE 기술보다 20배 빠른 20Gbps를 구현할 수 있다는 청사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우리 정부는 3.5㎓ 대역과 28㎓ 대역 주파수를 매물로 내놨고 6월 14일 최소 3조3,000억원부터 시작하는 경매의 막이 오른다.
하지만 주파수를 가져간다 해도 진정한 5G를 위해선 극복해야 할 한계가 적지 않다. 주파수는 대역이 높아질수록 전파의 도달거리가 짧아지는 데다, 장애물을 피해 돌아가는 ‘회절성’과 뚫고 통과하는 ‘투과성’도 낮아진다. 이 때문에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기지국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기지국 한 개당 효율도 높여야 해 기지국 위에 꽂는 안테나도 최대 16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 LTE 기지국에는 최대 4개의 안테나가 꽂혀 있다.
우리는 데이터 속도를 말할 때 보통 다운로드 속도를 연상하지만 5G에서는 ‘지연 속도’ 역시 중요하다. 반응속도라고도 불리는데, 5G에선 1㎳(0.001초)까지 지연속도를 단축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LTE 지연속도는 0.004초 정도다. 이 속도도 무리는 없지만 5G 환경 아래에서는 자율주행차, 각종 산업 로봇 등이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연속도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시속 100㎞로 달리고 있는 자율주행차가 급정거 신호를 받고 멈출 때 지연속도가 0.004초면 이미 1m나 더 이동한 뒤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0.001초까지 당겨야 2.8㎝까지 줄일 수 있다.
이 지연 속도 단축을 위해 이동통신사업자들은 기지국 주변에 서버를 최대한 많이 설치하고 효율적 데이터 제어를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도 접목할 계획이다. 통신사가 주파수 이용 대가 외에도 인프라 구축에 수조원씩 들어간다고 말하는 이유다.
유선통신의 경우도 오는 9월 10Gbps 속도를 내는 10G 인터넷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무선이 주파수를 타고 데이터를 실어 나른다면, 유선은 광케이블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광(光)케이블은 이론상 빛의 속도를 낸다고 할 정도로 속도 제한이 없지만, 우체국의 중앙국처럼 각종 메시지를 한 데 모았다가 목적지에 맞게 전달해 주는 핵심 장비인 스위치, 고객들이 쓰는 모뎀, 모뎀을 통해 데이터를 받는 PC 등 각종 기기도 같이 개발돼야 한다. 글로벌 표준 기준으로 현재 기술로 상용 가능한 최고 속도는 10G 인터넷이고, 국내 사업자 중 광케이블을 가장 많이 확보(55%)하고 있는 KT가 9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