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시간 머문 베이징서 뭐했나
‘시진핑 책사’ 왕후닝 접촉설 돌아
한반도 비핵화 등 의견 교환한 듯
“입지 축소된 中, 러시아 끌어들여
북중러회담 추진해 美 견제” 관측
#김영철은 조심스런 뉴욕행
항공편 수차례 바꾸며 노출 꺼려
최강일 등 실무진들도 언론 피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은 30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미국 뉴욕으로 향함에 따라 일정이 지연된 기간 중 중국 측과의 접촉 여부가 주목된다. 김 부위원장의 이번 방미는 사실상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가늠하는 최종 담판의 성격이 짙어 ‘시진핑(習近平) 배후론’으로 입지가 좁아진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반영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날 “김 부위원장과 중국 측 고위인사가 어제 밤 비공개로 만나 북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과 한반도 비핵화 방안, 대북제재 완화와 경제협력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안다”면서 “김 부위원장을 만난 중국 측 인사는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일 가능성이 높은데 시 주석의 책사인 왕후닝(王滬寧) 중앙서기처 서기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양측이 외신들의 취재망을 피해 국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가 아닌 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고 부연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중 접촉설에 대해 “제공할 만한 정보가 없다”며 비켜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소동을 거치면서 ‘차이나 패싱’(중국 배제) 우려가 다시 제기되는 등 중국의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태여서 어떤 식으로든 김 부위원장과의 접촉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와 관련, 다른 외교소식통은 “중국 측이 김 부위원장에게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논의 과정에서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어 중국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부분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김 부위원장은 베이징에 머문 27시간 동안 미국행 일정을 수 차례 바꾸는가 하면 출국할 때도 극히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전날 오전 9시50분께 베이징에 도착한 김 부위원장은 당일 오후 1시25분 베이징발 워싱턴행 항공편을 30일 오후 1시 뉴욕행으로 예약을 변경했고, 이어 30일 오후 10시35분 뉴욕행으로 또 다시 변경했다가 30일 오전에서야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중국국제항공 CA981 항공편 탑승권을 결제했다. 이를 두고 미국과의 일정 협의를 반영한 측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동선이 노출되는 걸 피하려는 목적이 더 컸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뉴욕으로 출발할 때도 김 부위원장은 베이징 서우두(首都)국제공항의 귀빈실을 이용해 언론 접촉을 피했고, 항공기 내에서도 방미 목적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북한 대미 외교의 주요 실무자로 꼽히는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대행,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 김 부위원장을 수행하는 인사들도 공항에 도착한 뒤 북미 간 실무협의 진행 상황 등을 묻는 질문을 외면한 채 곧장 공항 셔틀버스를 이용해 항공기로 이동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예상하는 시각도 있어 주목된다. 중러 양국이 주도하는 안보ㆍ경제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내달 8~9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열리는 것을 두고서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 급변 과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러시아가 외교수장을 오는 31일 평양에 보내는 건 적극적인 역할을 원한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홍콩 언론 등에서는 SCO 정상회의 기간 즈음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 주석의 3차 정상회담 또는 푸틴 대통령까지 포함한 북중러 3자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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