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대한항공 갑질과 동급
개인 일탈과 기업 경영 구분해야“
“공정위, 지배구조 개편 대안 없이
재벌개혁 추진은 현실 무시한 것“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에 재벌개혁 정책을 총괄하는 태스크포스가 꾸려지고,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방침을 30일 밝히자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다.
지방선거 이후 정부의 재벌 개혁이 본격화할 것이란 예측이 재계 내에서 무성한 데 그 예상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 임원은 “청와대 등에 포진한 몇몇 정권 실세가 여론의 질타를 받는 기업을 골라 오너 일가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하려 움직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대기업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국세청이나 공정위 한 곳만 움직여도 긴장하는데, 대기업 지분을 많이 보유한 국민연금까지 셋이 함께 나선다면 견딜 수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대기업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포스코나 KT 같은 ‘국민기업’을 만들어 정부의 입김 아래 두려 한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재계에선 대한항공이 ‘시범 케이스’가 되는 것이 아니냐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이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원회에 참석해 “한진 오너 일가에 대한 국민들 우려 해소를 위해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라”고 밝혔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여론을 앞세워 주주권한 행사를 제안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국민연금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은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임직원에 행한 갑질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수백 개의 국내 대기업의 지분을 많게는 10%씩 보유하고 있는데, 지분만 앞세워 기업에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공개적 지지 속에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방안이 결국 좌초된 것도,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표 행사를 확신하지 못해서였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의 예측가능성과 신뢰성은 정부로부터의 독립, 투명한 관리기구 구축 등이 선행돼야 형성되는데, 이 과제는 외면한 채 장관의 말 한마디로 기업 경영에 간여하는 잘못된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의 재벌개혁 추진도 현실을 무시한 몰아치기가 거듭되면서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삼성에 지배구조 개편안을 연말까지 내놓으라고 거듭 촉구하고 하면서도 현실적 대안 제시는 외면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해법 중 하나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중 2%만 삼성물산에 매각하면 된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 경우다. 삼성은 삼성전자 지분 2%는 6조원이 넘는 돈으로 삼성물산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며 설사 매입하더라도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되거나, 또 다른 순환출자 구조가 강화돼 현실성 없는 대안이라고 말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재벌개혁이 필요하다면 해결을 위해 기업과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공정위는 채점만 할테니, 답은 기업이 알아서 풀라고 하는 식”이라며 답답해 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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